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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인숙
                                                                                                칼럼
            사각지대 메꾸기 2 : 온라인 그루밍 처벌법, 왜 이렇게 늦었을까?

         국회의원이 되고 “아동·청소년 온라인 그루밍 처벌법”을 1호            이입이 없었던 것이 아닐까.
         법안으로 낸 후 열띤 반응에 놀라면서도 한편에 떠나지 않는             십대 여성 아동·청소년이 성적 문제로 얽히면 사회적 저항감은
         질문이 있다. ‘왜 이제야 우리는 이것을 하고 있지?’라는 궁           매우 크다. 십대는 여성과 남성이 원하는 성적 기대나 환상이 극
         금증이다.                                        적으로 다르게 나타나는 때다. 십대 남아의 성욕은 당연하고 자
         최근 조사 결과(한국여성정책연구원, 2020)를 보면 온라인 그          연스럽게 보지만, 십대 여아는 성욕이 없고 드러내는 것은 더욱
         루밍 처벌에 98.8%(여성 99.3%, 남성 98.3%)가 동의했다. 오    안 된다는 것을 당연시한다. 그래서 성매매에 얽혀 범법자가 되
         랜 연구자 경험으로 봤을 때 설문조사에서 이렇게 높은 동의             고 사회적 기준에서 일탈해 버린 십대 여아의 삶까지 고민하고
         율은 극히 예외다. 그냥 모두 다 찬성하고 있다. N번방 사건이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십대의 성매매도 성인 성매매와 같
         우리 사회에 준 충격도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이 돈을 바라는 것이라는 시장적 프레임이 강했다. 취약성이 이
         그러나 수십 년 전에 이미 인터넷 세상이 본격적으로 열렸다.            해되고 그루밍 과정을 통해 성매매에 몰리는 피해자적 관점을
         그리고 아동·청소년의 성보호는 사회적으로 명분이 센 일이              갖기 어려웠다.
         다. 논쟁의 여지 없이 거의 100% 동의를 얻는 일이 사회 의제         인터넷 세상이 열리면서, 가출청소년만이 아니라 소위 평범한 가
         화되는데 이렇게 오래 걸렸다는 것은 이상하다.                    정 내, 학교 안 아동·청소년에게 성착취, 성매매 유혹이 무섭게
         다른 나라의 예를 봐도 이런 의문에 힘이 실린다. 온라인 그루           집중되었다. 그런데 정책과 법안을 결정하는 50, 60대 사람들은
         밍 처벌법은 2017년 기준 63개국에서 시행되고 있다. 영국은          너무 몰랐다. 십대여성인권센터의 조진경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2003년에 시작했고, 유럽의회는 2007년 관련 협약을 비준했          “온라인 세상에서 아동·청소년이 얼마나 쉽게 성착취에 이용당
         다. 미국과 스웨덴은 2009년, 네덜란드 2010년, 호주가 좀 늦어      하는지 몰라요. 성인 여성보다 훨씬 쉬운 거죠. 처음에 아동·청소
         서 2017년이다. 옆 나라 일본도 ‘인터넷 이성 소개사업을 이용한        년을 성적으로 사거나 이용하는 것을 금기로 생각했던 남성들의
         아동유인행위 규제법’을 2003년에 공포했다.                    경험이 축적되다 보니 다 알게 된 거죠. 접근이 쉽고 비용이 싸다
         우리의 경우, 온라인그루밍처벌법이 오랫동안 국회에서 논               는 것을. 취약한 아이들이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지를. 주저하던
         의되고 통과되지 못해 지연되었던 의제도 아니다. 최근 2~3            남성들까지 무섭게 달려드는 현실과 경험이 모이고 그것이 N번
         년 디지털 성폭력이 이슈화되면서 생긴 사회적 관심에 N번              방까지 가게 된 거죠.”
         방 사건이 결정적 쐐기를 박았을 뿐이다.                       온라인 그루밍 의제가 늦게 진행된 이유를 생각하면서 긴장감
         우선 가출청소년만의 문제로 봐왔던 이유가 클 것 같다. 한국 사          이 더 커진다. 디지털 성폭력의 세계는 아직 규율되지 않는 영
         회는 청소년 집단에 대해 보호해야 한다는 책임감도 크지만, 제           역이 대부분이다. 젊은 세대에게 디지털 공간은 비가상 세계만
         어할 수 없는 일탈의 이미지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특히 가정과          큼, 어쩌면 그 이상의 비중을 가지고 있다. 익명성에 가려 현실
         학교의 틀을 벗어난 아이들을 범죄자 혹은 범죄 집단으로 여기            의 폭력과 혐오가 더 극단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런데 이 세
         는 이미지가 상당히 강하다. 그 때문에 촉법소년 연령 하향을 원          계의 문제를 잘 모른 채, 많은 것을 판단하고 결정하는 기성 세
         하는 목소리도 크다. 성매매에 연루된 아동·청소년도 이런 범주           대의 갭을 메꾸기는 쉽지 않다. 이 갭을 깨기 위한 노력, 당연히
         에서 바라봤던 것 같다. 아동·청소년 성매매를 특별한 아이들의           너무 중요하다.
         문제로만 여기고, ‘우리 아이도 범죄에 노출될 수 있다’라는 감정                                 2020.07.02 페이스북 게재


                                                권인숙    1호 법안
                                                        #‘온라인 그루밍 처벌법’ 들여다보기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19세 이상의 사람이 아동·청소년에게 성적 목적의 대화 또는 대화에 참여시키는 행위 △성교 행위·자위 행위 등을 하
        도록 아동·청소년을 유인·권유하는 행위 △아동·청소년의 성을 사기 위하여 아동·청소년을 유인하거나 성을 팔도록 권
        유하는 행위 등을 ‘아동·청소년 대상 성적 유인·권유행위(그루밍)’로 규정하고, 그루밍 행위를 한 자에 대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규정 신설

        「전기통신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
        부가통신사업자의 불법촬영물 등 유통방지 조치 대상에 아동·청소년 대상 성적 유인·권유행위에 관한 정보를 포함하도록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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