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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정치 와글와글] 2020.11.26 (인터뷰 발췌)


         제대로 된 낙태 논쟁이 없었던 나라                          "지난해에 헌법재판소에 법무부가 낸 변론요지서만 해도, 낙태
                                                      를 원하는 여성에 대해 '성교는 하되 책임지지 않으려는 사람'
         지난 16일 국회 의원회관으로 그를 찾아갔다. 의원실 한쪽 벽면
         을 빼곡히 채운 서가 때문일까. 의원실이라기보다는 교수 연구            으로 규정해서 '문란한 성'의 문제로 몰아가기도 했는데, 작년에
         실처럼 보이는 공간이었다.                               이어서 제대로 된 공론화 과정을 거치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지
                                                      금까지 전 세계 중에 우리처럼 낙태를 둘러싼 논쟁을 제대로 안
         Q. 요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낙태죄 개정안 얘기부터 시작            한 나라는 없을 거예요. (웃음)"
         할까요? 정부 개정안 입법 예고가 나온 게 10월 7일인데, 닷
         새 만에 바로 전면 폐지 개정안을 내놓으셨어요. 정부 개정안            낙태죄 정부 개정안은 사문화된 법에 날개 달기
         이 이렇게 나올 줄 알고 미리 준비해 두신 건가요?                 그간 우리 사회는 공정한 논쟁을 뒷받침할 객관적 자료조차 제
                                                      대로 확보해 놓지 못했다. 2011년 이후 7년 만에야 실시된 2018
         "제가 국회의원이 되면서부터 낙태법은 제 책임이라고 생각하
         고 있었어요. 사전에 법무부 장관도 만나고 여당 의원들도 만났           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가 현재로선 가장 최근의 것인
         어요. 법무부 장관도 폐지 의견에 동의하시고 법무부 양성평등            데, 만 15세~44세 여성 응답자 1만 명 중 임신중절 평균 연령은
         위원회도 낙태죄를 폐지하는 방향으로 권고를 해서 의견을 모             28.4세, 평균 횟수는 1.43회, 전체 임신 여성의 19.9%가 임신중
         으는 과정이었는데..."                                절을 경험했다고 집계됐다.
                                                      임신중절 이후 적절한 휴식을 취했다는 여성은 47.7%에 불과하
         Q. 그런데 왜 이런 정부안이 나왔을까요?                      고 54.6%가 죄책감, 우울감, 자살 충동 등 정신적 증상을 경험

         "보건복지부나 정부 부처에는 '균형'이란 개념이 강하게 작용해           했다고 응답했다. 주제의 민감성 때문에 정확하게 답변하기 어
         요. 한쪽에는 여성, 한쪽에는 종교계나 이런 쪽 의견을 놓고 균          려웠을 거라는 점을 감안하면, 미혼의 저연령층 여성의 현실은
         형을 맞춰 안을 만들려고 하죠. 문제의 직접적 당사자는 10대부          이보다 더 심각할 것으로 추정된다. 낙태죄 형법 조항을 개정해
         터 40대까지 여성들인데 그들의 목소리를 (종교계 등과) 등가           야 한다는 의견은 75%, 가장 큰 이유는 '인공임신중절시 여성만
         로 보려는 하는 기계적 균형이 문제죠. 입법 예고가 가능한 시기          처벌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까지 어떻게든 합의를 보면서 내놓으려고 하다 보니까 졸속적             Q. 지금 정부안의 한계는 뭐라고 보십니까?
         인 안이 나온 게 아닌가 싶어요."
                                                      "가장 큰 문제는 사문화된 낙태죄를 다시 살려내는 결과가 될
         Q. 이번에 공동발의자로 참여하신 분들을 보니 민주당 내에             수도 있다는 점이에요. 형법은 원래 아주 엄격하고 한정적인 법
         여성계를 대표한다고 하신 분들도 많이 빠져있고 남성 의원              이라서 엄정하게 지켜지도록 만들어지는데, 숙려제니, 상담확
         은 한 명도 없어요.                                  인서니 임신 주 수에 따른 규정 같은 걸 줄줄이 붙여놔서 형법

         "빨리 법안 발의를 하기 위해서 알음알음 이야기 나눈 분들과            이 아주 길게 늘어났어요. 임신 주 수라는 것도 명확한 측정이
         서둘러 안을 낸 거고요, 공동발의자에 이름은 안 올렸지만, 적극          쉽지 않은 불명료한 개념인데 온갖 모호한 것들을 다 붙여놔서
         적으로 돕는 분들도 계세요."                             오히려 사문화된 법을 다시 살아나게 했죠. 역사적인 관점에서
                                                      보면 명백한 퇴행이에요."
         Q. 그런데 왜 민주당 당론으로 정하질 못합니까?
                                                      Q. 임신 주 수라는 게 정확하게 딱 측정이 되기 어렵다는 걸
         "정부안이 나왔으니까요. 민주당으로서 그건 불가능해요."              모르나요? 특히 생리가 불규칙한 사람들은 임신 여부를 확인

         Q. 지금 당내 중론은 어떻습니까?                          하는 데 꽤 시간이 걸리는데.
         "일단 정부안이 나오면 정부안으로 많이 기울게 되죠. 부처 간에          "청소년들이 제일 문제가 되는데 청소년들은 자기가 임신한 것
         조정이 된 안이니까. 그러긴 해도 법사위에서 어떻게 다뤄지느냐           도 잘 모르고 아니겠지 하다가 24주를 넘기는 게 드문 일이 아
         가 중요한데 정부안이 나오고 나서 여성계의 반발이 강력하고 국           니에요. 청소년 입장에서, 낙태를 범죄라고 규정할 때와 범죄가
         회 청원에도 10만 명이 참여했잖아요. 정부안 그대로 가기도 쉽          아니고 사회가 의료 행위로 받아들여 줄 때 언제 더 빨리 주변에
         지 않겠구나 하는 인식이 점차 확산되고 있어요. 여성들이 적극           의논하고 처리할 수 있겠어요? 근본적으로 여성의 임신 중지를
         적으로 나서면서 기계적 균형론도 조금씩 깨지는 것 같고요."            국가가 범죄로 다루는 것 자체가 문제죠."
         Q. 지난해 4월 리얼미터 조사에 따르면 낙태죄에 대한 여론            Q. 낙태 반대자들은 태아의 생명권을 주장합니다.
         이 최근 10년 사이 크게 변화한 걸 볼 수 있어요. 2010년에         "생명권을 지켜가는 방식은 여성의 삶과 건강권에 토대한 것이
         34대 53으로 낙태죄 유지 여론이 높다가 2019년엔 58대 30        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여성의 선택과 결정을 잘 지지해 주는 것
         으로 폐지론이 크게 앞질렀죠.                             이 생명을 존중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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