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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 유적
제4장 고려시대의 오산 · 유물
홍영의 | 국민대 한국역사학과 교수
제1절 고려의 건국과 오산지역의 행정체제
오늘날의 오산(烏山) 지역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수주(水州)의 속현은 진위현(振威縣)으로 현재
오산시의 남쪽에 접하고 있다. 수주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 전국에 9주 5소경을 설치했을 때 고
구려 이래 매홀군(買忽郡)이라 불렸으며, 9주의 하나인 한산주(漢山州)에 소속되어 있었다. 진위현은
본래 고구려의 부산현(釜山縣)으로, 연달부곡(淵達部曲), 금산현(金山縣) 송촌활달(松村活達)이었다.
신라(新羅) 경덕왕(景德王) 때 전국의 행정구역 명칭을 한화(漢化)식으로 변경하면서 지금 이름으로
고치고, 수성군(水城郡)의 영현(領縣)이 되었다. 1)
후삼국이 쟁패를 다투던 무렵 수성군은 신라의 지배에서 일찌감치 떨어져 나와 궁예(弓裔)의 태봉
(泰封) 영내에 포함되어 있었다. 당시 태봉은 오늘날 강원·경기·황해, 충북의 전부와 충남·경북의
일부까지도 손에 넣은 후삼국 판도의 거의 2/3를 차지하는 최대의 세력권을 형성하고 있었던 때문이
다. 그러나 수성군이 태봉의 영토 내에 포함되어 있었을지라도 태봉의 중앙 행정적 권위가 수성군에
직접적으로 미칠 정도는 아니었다. 당시의 다른 지방이 대개 그러했듯이 지방 유력자(호족)의 직접
지배 아래 반독립적인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수성군이 수주(水州)로 승격한 것은 고려 태조 23년(940) 군현명칭의 개정 때이다. 『고려사』 지리지
양광도 수주조를 보면, “고려 태조가 남방을 정벌할 때 이 군 사람인 김칠(金七), 최승규(崔承珪) 등 2
2)
백여 명이 태조에게 귀순(歸順)하여 협력하였으므로 그 공로로 승격시켜 수주라 하였다”라는 기록
이 나온다. 김칠과 최승규는 귀순 당시 수성군 영역을 지배하던 유력한 지방세력을 대표하는 존재임
에는 틀림이 없다. 다만 여기서 태조의 남정(南征)이 궁예 휘하의 장군으로서 후백제 영역을 경략하
던 때를 가리키는 것인지 아니면 고려 개국 이후의 일을 가리키는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적
1) 『高麗史』 권56, 志10 地理1 楊廣道 水州 振威縣.
2) 『高麗史』 권56, 志10 地理1 楊廣道 水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