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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맥류는 수원면의 서남부 지역이 높은 생산력을 보이고 있다. 4)
1926년 간행된 『수원군생활실태조사』를 보면 당시 수원군은 21개의 면과 277개의 리가 있었다. 이
중 현재 행정구역 상 오산시에 속하는 성호면의 1925년 행정구역 호구수는 다음과 같다.
현재 행정구역 1925년 면명(호구수) 1925년 행정구역
궐리(86), 가장리(33), 서리(73), 가수리(38), 누읍리(46), 벌음리(39), 두곡리(37),
오산시 성호면 (1,549) 탑리(64), 부산리(56), 원리(90), 오산리(446), 양산리(76), 서랑리(38), 지곶리(79),
세교리(114), 외삼미리(60), 금앎리(67), 내삼미리(66), 수청리(41)
1920년대 수원의 공업 상황을 보여 주는 『생활실태조사(1) 수원군』에 의하면 1925년 말 수원군의 인
구는 2만 7,182명인데 그 중 한국인 2만 6,338명, 일본인 787명, 중국인 56명, 영국인 1명이었다. 이
중 137명을 고용한 10개의 공장에서 총 38만 3,000엔을 투자하여 89만 4,125엔의 생산액을 보이고
있다. 이때의 생산물은 전기력 24만 5,229㎾, 인쇄물 510만 매, 조선지 11만 8,000매, 백미 2,378석,
현미 19만 9,543석, 생사 80관, 놋그릇 3,780개, 목재 9만 5,000재 등이었다. 5)
표 2. 수원군 내 국적·직업별 호수(1927년) 6)
종별 조선인 호수 일본인 호수 외국인 호수 계 비고
농업 228 22,426 4 22,658
수산업 - 121 1 122
공업 34 239 28 301 지주 985명
자작농 1,876명
상업 175 1,581 3 1,759
자작겸 소작
공무·자유업 274 831 - 1,105 6,635명
기타 86 905 - 991
계 797 26,103 36 26,936
한국인 공장의 수는 1911년 252개, 1921년 2,384개, 1930년대에는 4,261개로 증대되어 갔으나, 노
동자 50명 미만의 소공장이 전체 공장 수의 94.5%를 차지하였고, 100명 이상의 대공장은 전체의
2.1%에 불과했고 생산액은 매우 낮았던 것으로 보인다. 7)
1937년 당시 수원에서는 미약하나마 섬유공업의 붐이 조성되고 있었다. 섬유 부분을 제외하고 공
업이라고 할 만한 분야가 없었다. 1940년 10월 SK그룹의 전신인 선경직물은 평동에 토지를 매입하여
공장을 짓기 시작하였고, 1943년부터 본격적으로 제품 생산에 들어 갔다. 당시 선경은 1-2공장에 방
오산시사
4) 『화성시사 9』, 19쪽.
제
5 5) 『화성시사 9』, 26쪽.
권 6) 『화성시사 9』, 27쪽.
7) 『화성시사 9』, 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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