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99 - 오산시사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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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동 함박산 밑 배마니(배무니) 골짜기에 있는 샘물로 조선시대 때 세조대왕께서 피부병이 있어                                         197
                  온양으로 온천욕을 하러 가다 이곳에서 잠시 멈춰 이 샘물로 목을 축이게 되었는데, 물이 차고 맛이                                          생활환경

                  좋아 크게 기뻐하며, 찬우물이라 명명하고 샘물 관리를 위하여 샘물 근처의 농토에서는 세금을 받지
                  말라는 어명을 내렸고, 그 후부터 근처에 객사가 지어졌다고 전한다. 그래서 일제강점기 때에도 이곳                                           /  지명유래

                  의 농토는 세금을 내지 않았다고 한다. 최근까지도 그 일대에는 옛날의 기와 편이 나오는 것으로 봐
                  서 객사 아니면 근처에 절터가 있었다고 추측하나, 확실히 있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하여튼 그 후에

                  찬우물이란 이름 대신 임금님이 드신 샘이라 하여 어정(御井)이라고 부르며 약수터로 유명했던 곳이
                  다. 현재는 가장동산업단지에 편입되어 건물과 길이 들어서며 없어졌다.



                    한편 가장동에 정착해서 살았던 사람들은 대체로 청주 한씨, 창원 유씨, 경주 이씨 등이 대성을 이

                  루고 있었으나, 지금은 창원 유씨만이 집성촌을 이루며 마을을 지키고 있다. 두소나무백이는 가장동
                  에서 산제사를 드리는 곳이었으며, 40리 밖에서도 볼 수 있었던 큰 소나무가 두 그루 서 있었다고 전

                  하나, 현재 소나무들은 죽고 없다.





                  제2절    청학동(靑鶴洞)



                    뒷산에 푸른 소나무가 많았고 학이 많이 날아왔으므로 청학골, 청학동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 오산정보고등학교에서 대호밭으로 넘어가는 고개가 학현(학고개)으로 불리는 것도, 오산대학

                  교의 뒷산 이름이 소나무가 많았고 학이 많이 날아들어 청학산이라 불렀다는 것도 청학동의 유래를
                  뒷받침하고 있다. 현재 청학동은 세교택지개발지구에 포함되어 모두 개발되어 옛 모습을 확인할 수

                  없다.


                  ■ 전말(마을)

                    전말, 점촌이라고도 불렸으며 청학동 일대를 예전에 부른 이름으로 예전에 이 일대에 옹기점이 많

                  아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전해지나, 이곳에 무쇠를 이용한 솥 공장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
                  이 확실한 것 같다. 지금도 이 일대의 땅에서는 쇳물 굳은 조각이 나온다고 한다.



                  ■ 웃말(마을)

                    위에 있는 마을이다.


                  ■ 아랫말(마을)

                    아래에 있는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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