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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 전하는 문서에 의하면 산신제는 매년 시월상달 초하루였던 것으로 파악되었다. 그러나 사
                  정에 따라서는 초이렛날 거행되기도 하였다. 윗마을(대호밭)과 함께 산신제를 진행하였던 기억은 없

                  으나 적어도 문서에는 두 마을이 함께 제의를 진행하였던 것으로 기록되어있다. 그리고 시월 초하루
                  라면 구월 그믐날 제사를 지내 시월 초하루에 끝나는 것이었다고 하며 이렇게 하는 이유는 부정이 드

                  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제사를 지내기 위해 당주를 뽑았는데 생기복덕이 맞는 부부를 뽑았다. 당우물이 따로 있지는 않았

                  으나 마을의 공동우물을 당주부부만이 쓸 수 있도록 하였다는 점은 매우 특이하고 흥미로운 내용이
                  아닐 수 없다. 당주가 되면 당주집에는 금줄을 걸었고 대문 밖에는 황토를 깔았다. 그리고 물을 떠 놓

                  았다고 한다.
                    당집에는 ‘문산신위(文山神位)’라 써 놓고 제사를 지냈다고 하는데 현재는 당집의 훼손이 심각한 상

                  태이고 그러한 흔적을 찾을 수는 없었다. 문산(文山)에 당집의 이름은 성황당이라고 하였으며 성황당
                  에서 모시는 신격은 산신이었다고 한다.



                    궐리 <궐리사축문>

                    水原郡城湖面闕里祠里中
                    昭和十二年丁丑十月一日作成



                    維歲次 ○○十月 ○○朔  ○○日 ○○朝鮮國京

                    畿道水原郡城湖面闕里上下民人等屬
                    幼學○○○沐浴齊戒虔告于

                    城隍神位之前曰伏以兩儀肇判人物幷生
                    先王制禮各盡其情國有社稷邑置

                    城隍矧玆華土位次愈尊仙寢密邇
                    聖祠攸存百家同里北山爲主精一搆宇

                    不忒其儀自近以來荐値豊穰風俗質敦
                    莫非陰賜今以吉辰籩䇺聊藏粢盛旣潔

                    犧牲在前神其醉止降以遐福壽考康寧
                    登仕攝職病者以愈憂者以樂百厄消滅

      오산시사          六畜繁盛無子以有用貧爲富上居有禮
                    下居無憂不期而然惟神所佑遂稽首拜手

                    獻頌曰文山一碌維嶽之丈君子所瞻

      제
      6             小民所仰厚載以物不辭土壤凡我同閈
      권
                    孰不敢祀歲歲勿替神其 尙
                    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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