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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누읍동 141
누읍동에서는 당산의 정상 참나무에 7월 보름 안에 좋은 날을 잡아서 산신제를 지낸다. 산신제는 구비전승
마을과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의미였다. 누읍동의 당산 혹은 당제산은 산신제를 지내던 산이란 뜻
이다. · 민속
(1) 산신제 · 경기도당굿과
산제사에는 소를 잡으며 고기를 열 근, 닷 근씩 몫을 나눈다. 예로 열 근을 가지고 없는 사람은 열
집이 한 근씩 먹고, 있는 사람은 두 집이 먹는 식이었다고 한다. 경기재인청
보통 산신제의 경우 정월이나 구월 그믐을 넘겨 지내는 것이 일반적이나 누읍동에서는 7월에 산신
제를 지내고 있다는 점이 매우 특이한 경우라 하겠다. / 성씨
(2) 우물제사 · 인물
그리고 대동우물에서는 우물 제사(井祭)를 지냈는데 정월대보름날에 지냈다고 한다. 그것도 우물
제사만 지내는 것이 아니라 두레를 놀고 떠들썩하게 지내야 마을이 편안하고 우물물이 마르지 않았
다고 한다.
8) 내삼미동
(1) 산신제와 우물제사(내삼미1동)
산신제는 음력 9월 그믐에 지내는데 이때 우물제사를 겸한다. 마을에서 위하는 제당은 네 곳이다.
필봉산과 찬우물, 은행나무, 산꼭대기를 각각 제당으로 하고 있다. 산신제에는 소를 한 마리 올리고
있다. 필봉산의 제당에는 등심을 찬우물에는 앞다리를 올리고, 은행나무에는 갈비를 올리며 산꼭대
기에는 뒷다리를 올린다. 소 한 마리의 형상을 그대로 올리는 것이다.
제관에게는 염통을 주고, 일하는 사람들에게 한 몫씩 더 준다. 떡과 과일은 쓰지 않으며 고기를 조
금씩 잘라서 창호지에 싸서 제당인 나무에 묶는다. 찬우물의 경우는 앞에 있는 나무에 묶는다.
(2) 대량굴 산제사와 우물제사
대량굴에서도 우물제사와 산제사를 지냈었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것은 아니었고 1970년
대 시작을 해서 한 3년을 지내다가 70년대 중반부터 산신을 절에다 모셨다.
산제사를 지내게 된 이유는 1970년대에 마을에서 자꾸 사고가 나고 해서 마을주민들이 회의를 하
여 산제사를 지냈다. 원인은 1번국도의 확장 때문이었다. 길이 좁다가 넓어지니까 익숙하지 못한 주
민들이 교통사고를 많이 당했다. 그래서 예방 차원에서 산제사를 지냈던 것이다. 그러나 한 3년 하다
가 주민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여 절로 모시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