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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 있던 수원구역은 감리사  스크랜턴(William Benton Scranton, 1856-1922)이 담당하고 있는 남부                           547
                  지방의 한 지역이었다. 수원구역의 구역장은 스웨월러(W. C. Swearer, 한국명 서원보[徐元輔]) 선교                                    문화

                  사가 맡고 있다가 1903년에 버딕(G. M. Burdick, 한국명 변조진[邊兆鎭])이 새로 임명되었는데, 버딕                                 · 예술
                        6)
                  이 연회 에 1905년의 선교를 보고한 내용에 오산교회(당시의 명칭 ‘오뫼교회’)에 대한 다음과 같은 언
                  급이 처음으로 나온다.                                                                                    · 체육  /  교육



                         올해에 나는 수원구역에서 3개의 새로운 모임(group)을 등록했는데 오뫼에는 24명, 선납재                                      /  종교
                        에서는 31명, 고주물에서는 94명의 신자가 있다.



                         오뫼에서는 지금 6간짜리 예배당이 건축 중이다. 완성되었을 때의 비용은 약 136엔이 될 것

                        이다. 이 교회는 아직까지 외국의 원조를 한 번도 받지 않았다. 건축에 필요한 대부분의 돈은
                        이 교회가 건축되기 전 3명의 신자에 의해 미리 모금되었다. 이 교회는 비록 심한 시련과 좌절

                        을 겪었지만 더욱 더 이 사업을 재촉해 나갔다.             7)



                         1905년에 현재의 오산지역에 처음으로 설립된 교회인 오뫼교회에 대한 이러한 기록에서 몇
                        가지 중요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오뫼교회가 설립되기 전에 이미 오산지역에 24명의 신자가

                        있었다는 것, 외국의 원조 없이 신자들이 교회당 건축을 했다는 사실, 그리고 신자들이 심한
                        시련과 좌절을 겪으면서도 굴하지 않고 교회당 건축에 전력하였다는 것이다.

                         1905년은 일본이 한국을 침략하고 수탈한 목적으로 경부선 철도 전체를 건설, 개통한 해이
                        고, 그 과정에서 일본인에 의한 오뫼교회 지도자에 대한 박해가 있었음을 다음과 같은 기록에

                        서 확인할 수 있다.



                         오뫼에서는 지도자가 거의 일본인 역부(驛夫)에게 목숨을 빼앗길 뻔하였다. 역부는 그를 묶
                        고 의식을 잃을 때까지 때려서 거반 죽은 상태로 버려두었다. 이런 야만적인 일이 벌써 3달 전

                        의 일인데, 그는 아직도 완쾌되지 않았다. 이 박해는 이 작고 새로운 교회에 고된 시련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신자는 믿음을 지켰다. 그리고 그 지도자는 믿음 안에서 더욱 강화되고 정련

                        되어 영화롭게 승리하게 되었다.          8)



                    이러한 초기 오뫼교회 지도자와 신자들의 굳은 의지로 인해 계속 신자가 들어나게 되었고, 일제 강






                  5)  ‘감리사’는 총회-연회-지방회로 이어지는 감리교의 조직에서 지방회 의장이 되는 목사로서, 대체로 장로교의 ‘노회’와 비슷한 규모이다.
                    한국 선교 초기에 ‘지방’을 감리사가 담당했다.
                  6) 미감리회 연회록(Official Minutes of The Korea Annual Conference of The Methodist Episcopal Church, 1983-930) .
                  7) 수원·화성지방감리사혐의회 홍석창 편저,   수원지방 감리교회사 자료집|, 감리교본부 교육국, 1987, 65, 66-67쪽.
                  8) 수원·화성지방감리사혐의회 홍석창 편저,   수원지방 감리교회사 자료집|, 감리교본부 교육국, 1987,  68-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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