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0 - 오산문화총서 3집
P. 30
지면서 집자리를 중심으로 하는 마을유적이 보고되고 있는 상황이다. 발굴결과를 살펴보면 현
재는 세교 신도시로 개발된 오산 내삼미동, 궐동, 청학동, 탑동 일원은 원래 청동기시대 마을이
있었던 곳이었음을 알 수 있다.
내삼미동유적(경기문화재연구원 2011)은 청동기시대 전기에서 중기에 걸치는 집터 40기가 발
굴된 대규모 유적이다. 규모가 가장 큰 집터는 길이가 22m에 달하며, 너비는 3.3m이다. 이 유
적에서는 주거지와 구덩이 등에서 토기와 곡옥, 석기 등 유물 총 362점이 나왔다. 이 유적의 주
거지 40기가 모두 같은 시기에 존재하지는 않았으며, 동시기에 공존한 가옥의 수는 20여 동을
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오산지역 마을의 형성과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내삼미동유
적은 최초의 마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보다 더 앞선 시기의 마을 유적이 새롭게 발굴될
가능성은 남아 있다. 절대연대가 측정된 14호, 17호 주거지의 연대는 기원전 10-9세기로 나왔
다.
<그림 11> 오산시 청동기시대 유적 분포 현황
28 이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