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8 - 오산문화총서 3집
P. 28

사회에서는 볼 수 없었던 직업의 전문화, 교역의 발달, 계층사회의 발전을 가져오는 혁신적인
                      변화가 있게 된다.

                        우리나라의 청동기시대는 민무늬토기와 마제석기가 보편적으로 이용되고 청동기를 제작 사
                      용한 시기로서, 고인돌과 같은 정형화된 묘제(墓制)가 등장하고 농경을 주요 생계경제로 하면서
                      사회복합도가 한 층 높아진 시대를 가리킨다. 공간적으로는 한반도 전역이 포함될 뿐만 아니라

                      라오닝〔遼寧〕지역을 비롯한 중국 동북지역, 그리고 그와 인접한 지역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역
                      사적으로는 문헌의 내용과 고인돌, 비파형동검, 미송리형토기를 근거로 한반도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古朝鮮)의 형성과 발전이 이루어지는 시기로서 매우 중요하다. 청동기시대의 시간적 범

                      위는 상한 연대를 기원전 1500년으로, 하한 연대를 기원전 300년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남한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청동기문화는 민무늬토기의 일종인 덧띠새김무늬토기를 생활용

                      기로 사용하던 단계에 해당한다. 이 시기의 사람들은 강변의 충적지에 마을을 조성하고 밭농사
                      를 통해 생계를 유지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아직까지 청동기와 무덤은 발굴된 바 없다. 이어
                      서 겹아가리에 짧은 빗금무늬를 새긴 토기와 구멍무늬토기가 성행한 시기가 되면, 비파형동검

                      을 비롯한 청동기와 마제석검(磨製石劍)이 제작 사용되며, 무덤이 조성되기 시작한다. 집자리의
                      형태는 장방형 또는 세장방형 평면을 띠는 대형이며, 생계경제는 화전(火田)을 포함한 밭농사가
                      중심을 이루었던 것으로 보인다. 청동기시대 중기에는 방형 또는 원형의 소형 집자리와 외반구

                      연(外反口緣)토기, 삼각형돌칼, 일단병식석검(一段柄式石劍), 홈자귀 등이 유행하는 단계이다.
                      전 시기부터 나타난 고인돌, 돌널무덤을 비롯하여 움무덤, 독무덤 등 다양한 종류의 무덤이 많
                      이 만들어지며, 비파형동검, 청동창, 청동도끼와 같은 청동기 또는 거푸집이 출토되면서 청동기

                      제작이 가속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함께 논농사가 확대되면서 경제적 부의 집중과 사회복
                      합도가 증가하게 된다. 이에 수반하여 마을을 도랑으로 돌린 환호(環濠)나 목책(木柵)과 같은 방

                      어시설을 갖춘 대형 마을이 나타나면서 개인 간 또는 집단 간의 사회적 위계 관계가 심화된다.
                      한편, 암각화나 입석(立石)이 있는 곳, 물가, 또는 마을 안과 밖의 다양한 공간에서 의례행위가
                      행해졌다. 청동기시대 후기에는 세형동검(細形銅劍)을 비롯하여 점토띠를 아가리에 붙인 점토

                      대토기(粘土帶土器), 흑색마연토기(黑色磨硏土器), 돌무지널무덤〔積石木棺墓〕등과 같은 일련의
                      물질문화가 유행하였다.














                      26  이형원
   23   24   25   26   27   28   29   30   31   32   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