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0 - 오산문화총서 3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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Ⅴ. 맺음말





                        그동안 오산의 선사문화는 금암동 고인돌이나 외삼미동 고인돌유적이 대표하는 것으로 인식
                      되어 왔다. 그러나 이 두 유적은 고고학 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연구의 진전을 기대

                      하기는 어렵다. 심지어 금암동 고인돌군으로 지정되어 있는 것 가운데 일부는 고인돌이 아닌 것
                      도 상당수 있는 것 같다.
                        오산의 선사문화에 고인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지역의 역사는 청호동유적에서 살펴 본 바

                      와 같이 구석기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우리나라 구석기를 대표하는 연천 전곡리유적에서 확
                      인되는 주먹도끼도 출토되었다. 가장동유적은 서울 암사동유적과 비교되는 것으로, 중서부지역

                      최고(最古)의 신석기시대 유적으로 평가받아야할 만큼 가치가 높다. 청동기시대에 들어서면 내
                      삼미동유적에서 집터 40기가 확인된 대규모 유적이 확인되었고, 탑동,두곡동유적은 가옥과 무
                      덤이 함께 공존한 마을의 모습이 발굴을 통해 밝혀졌다. 청학동유적에서 의례공간이 조사된 상

                      황을 함께 고려하면 청동기시대 오산의 물질문화는 다양하다고 볼 수 있다.
                        본고는 선사시대의 오산과 관련한 일부 자료를 소개하는 수준에서 정리하였는데, 이 뿐만 아

                      니라 오산에 분포하는 고대 및 중세의 고고학자료는 더욱 풍부하다. 그러나 원래 낮은 구릉상에
                      자리잡았던 오산시의 유적들은 모두 사라졌으며, 그 자리에는 높은 고층 아파트와 상가, 그리
                      고 공장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 개발지상주의 시대에 눈에 보이는 독산성과 고인돌만 신경

                      쓰고 관리하면 된다는 오산시 행정의 결과가 그대로 반영된 것으로 생각한다. 앞으로 개발은 계
                      속될 것이며 이에 수반하여 매장문화재도 계속 발굴될 것이지만, 이 또한 대부분 파괴될 것이라
                      는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다. 이와 같은 불행한 상황을 막기 위해서는 오산의 역사와 문화를

                      담당할 박물관이 조속히 만들어져야 한다. 지금까지의 고고학적 발굴 성과들은 오산의 역사와
                      문화를 살피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들이다. 연구가 필요한 자료와 전시할만한 자료는 차고넘친
                      다. 오산시에 소재하는 매장문화재에 대한 평가와 새로운 인식을 통해 지역의 역사적 정체성을

                      확립하고 시민들이 역사와 문화를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박물관이 건립되면 역사와 문화에
                      대한 시민과의 소통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이며, 이는 중요한 유적이 발굴된 후 파괴되지 않

                      고, 그 가치를 인정받음으로써 역사문화 인프라로 활용되는 전환점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희망
                      한다.
                        지금도 오산시 곳곳에서 고고학 조사가 진행중이거나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오산의 문화재가 끊임없이 발굴되는 현실을 직시하면서 역사·문화도시 오산의 미래를 설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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