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4 - 오산문화총서 3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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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조사 성과 및 조사단 의견
독산성 및 그 주변에 대한 금번 지표조사에서 통일신라시대부터 고려·조선시대에 이르기 까
지 다양한 유물들이 확인되었다. 비록 통일신라시대 이전의 삼국시대 유물이 확인되지는 않았
으나, 독산성 주변에서 조사된 삼국시대 유적들의 존재를 통해 차후 이 지역에서 삼국시대에 해
당하는 유적이 확인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금번 지표조사의 성과 중 하나는 독산성과 그 주변으로 통일신라시대에 해당하는 물질자료를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는 독산성 일대에 통일신라시대에 해당하는 방어거점 혹은 산성
을 위시한 주변의 대규모 취락이 존재하였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이번 조사에서는 고려∼조선시대의 건물지로 추정되는 유적의 존재를 확인하였다. 여기
에서 수습된 유물들은 고려시대∼조선시대 전기에 해당하는 유물들이며, 조선 후기에 해당하는
유물은 확인되지 않았다. 이에 대한 성격은 향후의 정밀 발굴조사를 통해 밝혀야겠지만, 만약
조선 전기에 해당하는 건물지라면 조선 전기의 독산성에 대한 영세한 기록을 고고학적으로 보
완해 줄 수 있는 가치가 있다.
이 밖에도 독산성으로부터 북쪽의 수원 화성·고읍성 방향으로 진행하는 교통로에 대한 단서
를 확인할 수 있었고, 이것이 세람교와 연결되는 것으로 추정되어 주목된다. 즉 고지도에 표현
된 교통로와 일치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비록 지표조사를 통한 추정에 불과하겠지만 독산성과
세람교를 잇는 교통로와 금번 지표조사 유물추정지를 연결하면 독산성 동문으로 이어지는 옛
교통로를 복원할 수 있다.
한편, 독산성 남쪽의 지곶동 고분군 및 유물산포지 조사를 통해 석곽묘로 추정되는 유구가 확
인되어 남쪽을 중심으로 분묘와 생활유적을 존재 가능성을 추정케 한다.
상기의 조사 성과를 종합할 때, 독산성과 주변 일대에는 통일신라시대로부터 조선시대 후기
의 장기간에 걸친 유적의 존재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 독산성의 규모와 위상을
감안할 때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성곽에 대한 연구는 성곽 자체에 대한 연구에 국한
할 경우 ‘鳥足之血’ 수준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주변지역의 경관과 더불어 총체적으로 이해하여
야만 그 본질에 접근할 수 있다. 이를 위한 방법론은 각 시대별 독산성의 변화과정에 대한 이해
는 물론, 동시기의 주변 마을, 사찰, 건물지, 교통로, 무덤군 등을 종합적으로 이해하여야 가능
할 것이다. 향후 위의 문제의식을 통한 연구가 이루어지길 바라며, 이 보고서가 작은 시금석이
되길 바라마지 않는다.
92 한신대학교 대학원 한국사학과 고고학실습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