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9 - 오산문화총서 3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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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王朝實錄』의 기록을 보면 정조가 독산성에 방문하여 장헌세자의 경진년(영조 36, 1760)
                       유숙과 관련한 행적을 마을의 父老들에게 묻고, 장헌세자를 떠올리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한

                       편 장헌세자의 행적 중 유숙 당시 진남루에 올라 활을 쏘았음이 기록되어 있으며, 이 기록을 바
                       탕으로 경진년에 이미 독산성에 진남루가 있었으며, 상부에서 활도 쏠 수 있었음을 확인 할 수
                       있다. 다만, 정조가 장헌세자의 행적 및 그를 떠올리는 것에 대한 기록이기 때문에, 시설에 대한

                       세부 기록은 되어 있지 않다.


                       1. 華城志



                         『華城志』는 1831년(순조 31)에 편찬된 화성읍지로 독산성의 규모 및 내부 건물, 관리, 병력 등

                       에 대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또한 진남루에 대한 기록도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아래와
                       같다.



                         『華城志』山城
                         ① 鎭南樓(도판 1, 2)

                         운주당의 남쪽에 있다. 영조 계유년(영조 29, 1753)에 중수하였다. 정조 경술년 운주당의 남
                       쪽에 있다. 영조 계유년(영조 29, 1753)에 중수하였다. 정조 경술년(정조 14, 1790) 특교로 개건
                       하였다. 경진년(영조 36, 1760) 장헌세자께서 활쏘기를 하셨는데 작은 과녁에 연이어 4시를 얻

                       었다. 6칸이다. 단확을 칠하였다. 루 아래에 고려 왕릉이라 이르는 무덤이 있다.(고적 조에 나온
                       다)…(중략)…성의 남쪽에는 벼랑이 있어 변응성이 누각을 세워 손님들이 와서 접대하는 곳으로
                       만들었다. 꽤 넓어 즐길 만하였으니 “진남루”라 하였다. 나에게 기문을 청하니 이 성의 전말을

                       써서 주었는데, 때는 만력 31년(선조 36)  계묘년(선조 36, 1603) 9월 이다. 월사는 기한다.…
                       (후략)…




















                                                                          독산성 진남루 위치에 대한 재검토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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