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5 - 오산시 역사문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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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산성 남문 진남루 터
독산성은 정조 때 수축을 다시 하고 공역을 시작할 때 토지신에게 올리는 고유제
를 지내도록 하였다. 정조는 고유제의 절차와 참여 인원까지 직접 지시하고, 고유문
을 직접 지었다. 수원부사를 헌관으로 삼고, 중군과 읍내 당상관을 지낸 조관(朝官)
을 아헌과 종헌으로 삼았다. 현재는 독산성문화제 때 약식으로 재현 시행해 오고
있다.
경기 남부 군사 행정의 중심지였던 독산성은 성 내에 수백호의 민가가 거주하는
생활공간이기도 하였고, 15개 건물에 167칸이 넘는 관청이 들어서 있던 곳이기도
하였다. 현재는 보적사, 세마대 2곳만 남아 있다.
현재 독산성은 복원을 위한 발굴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오산 독산성 남문지 부근 건물지 현황 항공사진(중부고고학연구소·한신대학교박물관 2018년
발굴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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