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4 - 오산시사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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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국, 오산전화국 등의 관공서가 밀집된 곳이다. 오산시장을 중심으로 일찍부터 장터가 발달하여
                  오산 경제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다.

                    오산동은 오매리(烏梅里), 천변동(川邊洞) 등으로 불렸다. 오산읍이 시로 승격되기 전까지는 오산
                  읍사무소가 있었다. 오산동의 남쪽지역과 오산역 주변을 포함한 대원동은 상가지역이다.





                  2. 대원동(大園洞)


                    오산시의 남동쪽에 있으며 오산인터체인지가 위치한다. 갈곶동(葛串洞), 고현동(高峴洞), 오산동

                  (烏山洞)의 일부, 원동(園洞), 청호동(晴湖洞)을 포함하는 이름이다.
                    1682년, 숙종(肅宗) 8년에 발행된 <동여비고(東輿備考)>는 청호역(菁好馹)을 기록한다. 청호역 주
                  변이 현재의 대원동이다. 조선시대의 청호역이 곧 지금의 오산인터체인지이다.

                    1793년 정조(正祖)조에 발간된 『수원부읍지』에 따르면 청호면(靑好面)이었다. 1831년 순조(純祖) 3

                  년에 발간된 『화성지(華城誌)』에 의하면 청호면에 7동이 있는데 갈곶리(葛串里), 기문동(奇門洞), 당
                  리(棠里), 원통리(元通里), 수덕동(修德洞) 등이었다.
                    1905년, 경부선 철도가 개통하면서 오산은 교통의 요지가 되었다. 오산뿐만 아니라 인접 군(郡)인

                  安城, 平澤, 華城, 龍仁 등으로 통하는 사통팔달의 교통 요지가 되었다. 안성에 고향을 둔 조병화 시

                  인의 시 ‘오산인터체인지’, 오산이 고향인 조석구 시인의 시 ‘오산인터체인지’는 그 시대의 아름다운
                  추억을 한 편의 시로 노래하였다. 원동(園洞), 역말(驛말), 당말(堂말), 밀머리, 우촌말(牛村말,佑村
                  말), 원당(元堂) 등이 대원동에 속했다.

                    1914년 4월 1일, 일제강점기에 수원군 성호면으로 통합되었다.

                    1941년 10월 1일, 수원군 오산면이 되었다.
                    1960년 1월 1일, 수원군 오산면이 화성군 오산읍으로 승격되었다. 읍으로 승격되면서 원리(園里)는
                  원(園)1·2·3·4·5·6·7리로 바뀌었다.

                    1989년 1월 1일, 오산시로 승격되면서 오산4리, 밀머리, 우촌말, 역말 등의 원리 일원을 역촌동(驛

                  村洞)으로 개칭하였다.
                    1991년 8월 13일, 역촌동의 이미지가 좋지 않다는 동민의 건의가 있어 시 조례 253호에 의해 대원
                  동(大園洞)으로 개칭되었다.

                    1995년 8월 13일, 대통령령 제14629호 시·군자치구역의 관할구역 변경에 관한 규정에 의거 행정
      오산시사        구역이 조정되었다. 평택군 진위면의 고현리(高峴里), 청호리(淸湖里), 갈곶리(葛串里)가 편입되어 39

                  통 11백 66반으로 편성되었다.
                    지금의 대원동은  (구)화성경찰서에서 갈곶동까지 대단위 아파트촌을 이루는 동이다.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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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
                  1) 갈곶동(葛串洞)

                    1995년 4월 20일에 평택시에서 오산시로 편입된 마을이다. 1899년에 발간된 『수원부읍지(水原府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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