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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관료 제도의 정비와 수령 지배 체제의 구축 115
역사
조선 왕조의 관료제도가 새롭게 정비되기 시작한 것은 태종의 등극 이후부터이다. 1401년(태종 1)
에 고려왕조의 유산인 문하부(門下府)를 혁파하면서 의정부(議政府) 관제를 신설하였다. 정부 조직을 / 유적
고려의 유제가 아닌 조선왕조의 통치체제로 변환시키는 작업이었다. 그런데 조선 초기의 관제 개혁 · 유물
은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다. 새로운 관제를 창립했다기보다는 고려왕조의 제도를 명칭만 개편했다고
해석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중앙 관제에서 문하부 좌우정승(左右政丞)을 고쳐 의정부 좌우 정
승, 문하시랑찬성사(門下侍郞贊成事)를 의정부 찬성사(贊成事), 참찬문하부사(參贊門下府事)를 참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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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사(參贊議政府事), 정당 문학(政堂文學)을 의정부 문학(文學)이라고 하였다. 관료의 담당 직
무는 대개 그대로면서 명칭만 변경한 것이다. 태종은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과거제를 거행하여
관원을 충원해서 관료 중심의 통치 기구를 구축하고자 하였다.
태종이 한국 역사상 최초로 무신의 선발 과거인 무과(武科)를 정식 제도로 거행한 것에서도 잘 나
타난다. 조선왕조의 관료를 선발하는 문과에서 3년 만에 시행하는 과거제인 식년시(式年試)를 무과
에도 동일하게 적용하였다. 무과 과거에는 『무경칠서(武經七書)』와 마보(馬步)·무예 등에 뛰어난 자
는 1등, 3가(三家)의 병서(兵書)와 마보·무예에 능통한 자는 2등, 마보·무예에만 잘하는 자는 3등으
로 삼았다. 다만 무과의 1등은 3명, 2등은 5명, 3등은 20명으로 하여 모두 28명을 정원으로 삼아 선
발하도록 했다. 무과를 거친 1등은 종7품, 2등은 종8품, 3등은 종9품에 바로 임명하게 하였다. 23)
이와 함께 태종대 중앙 관제의 개편에서 주목되는 부분이 1405년(태종 5) 정월의 육조 직계 제도의
구축이다. 왕조 초기에 국정에 참여하지 못하던 육조 관서를 국정의 중심에 본격적으로 참여시키는
조처였다. 국왕이 의정부를 견제하며 육조를 직접 관할하는 직계제로의 전환이었다. 육조 직계제는
국왕의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삼정승 중심의 의정부 기능의 축소였다. 그 대신에 국왕의 신임 관료
라고 할 수 있는 육조의 장관을 정3품 전서(典書)에서 정2품의 판서로 높였다. 또한 관료를 선발하는
동서반(東西班)의 전선(銓選)을 이조와 병조로 이관했으며, 군사 및 재정의 기반인 전곡(錢穀)과 군기
를 각각 관장하던 사평부와 승추부를 폐지하고 그 사무를 호조와 병조로 이관시키는 대대적인 관료
체제 정비였다. 의정부의 서무(庶務)도 육조로 나누어서 귀속시켰다. 육조에 각각 판서 1명을 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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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질(職秩)을 정 2품으로 하였으며, 좌우 참의(參議) 각각 1명을 두었다. 1405년에 구축되던 육조의
직무 분담과 소속을 보면 다음의 (표 1)과 같이 정리된다.
22) 『태종실록』 권2, 태종 1년 7월 13일(경자).
23) 『태종실록』 권3, 태종 2년 1월 6일(기축).
24) 『태종실록』 권9, 태종 5년 1월 15일(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