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13 - 오산문화총서 2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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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혼날을갈여내여, 문우에붓처놋코
                        조라치성들이려고

                        새박아지새동이엽헤끼고
                        공즁에소슨물셋일곱스물한박떼내여
                        상탕에머리감고, 중탕에목욕하고

                        하탕에손발발원시위손의상에
                        진쥬단말신여백마졍성으로들여놋코
                        단골만신청좌하야

                        게관집사사지셩방세워놋코
                        이졍성을들일때에

                        처음에오시는님신어는님이오시는야***







                        Ⅷ. 백범 김구의 『백범일지』속 오산지역 발자취





                          『백범일지』 「삼남견문록」에서



                           “그날로 동적강(銅赤江)을 건너 삼남지방으로 향했다. 그때 내 마음이 매우 울적하여 승방(僧房)뜰
                           에서부터 폭음을 시작했다. 밤낮으로 계속 술을 마셔대면서 과천을 지나 겨우 수원 오산장(烏山場)
                           에 도착하자 한 짐이나 되었던 노자가 다 떨어지고 말았다.
                                        3)
                           오산장 서쪽 동네  에 김삼척(金三陟)이라는 사람의 집이 있었는데, 주인 영감은 전에 삼척영장(領
                             4)
                                                                       5)
                           將)  을 지낸 사람이었다. 아들 여섯이 있었는데, 그중 맏아들  이 인천항에서 상업을 경영하다가 실
                           패한 관계로 인천감옥에서 한 달가량 고생한 적이 있었다. 감옥에 있는 동안 나를 몹시 사랑하였는
                           데, 자기가 방면될 때에도 차마 헤어지기 힘든 마음에 뒷날 다시 만날 것을 굳게 약속한 터였다. 그
                           집에 찾아가서 그들 여섯 형제와 같이 술 마시고 노래 부르며 며칠을 보냈다. 약간의 노자를 얻어가
                           지고 공주(公州)를 지나 은진(恩津) 강경포(江景浦)에 있는 공종열(孔鍾烈)의 집에 찾아 들어갔다.”



                        3) 동네 이름은 잊었다한다. 필자는 오산장 서쪽 동네를 오산시 남촌동의 남촌마을로 보고 있다.
                        4) 영장은 감영이나 병영에 딸린 각 진영의 무관직 벼슬인 진영장의 준말이다.
                        5) 국사 원본은 김삼척의 맏아들 이름을 김동훈이라고 적고 있다.


                                                               새롭게 기억하고, 기록되어야 할 오산이야기(Ⅱ)  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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