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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5장     오산시의 장시                                                          /  지명유래






                                               김소희 │ 아시아문화연구원 연구실장









                  제1절   장시(場市)의 의미와 발달



                    시장(市場)은 “인적·물적·시간적 공간적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합쳐져 교환의 기능을 중심으로
                                      1)
                  이루어진 사회적 제도” 로서 교환과 거래 등이 이루어지는 구체적인 장소를 뜻하는데, 한국에서는
                  이를 장시(場市)·장(場) 등으로 불러왔다. 이처럼 장시(場市)는 넓게는 전통시대의 장을 통칭하지만
                                                                               2)
                  구체적으로는 “지방의 경제·유통의 중심지에서 열렸던 사설 정기 시장” 을 의미하며 정의에 따라서
                  는 시대를 한정시켜서 “조선시대에 상업이 발달하면서 자리 잡은 정기적인 시장”을 의미하기도 한다.
                    문헌상의 기록에 의하면 한국 최초의 시장은 『삼국사기』에 기록된 소지왕 12년(490년)에 개설된 경

                         3)
                  시(京市) 라고 할 수 있으나 고조선 시대부터 화폐를 사용하였기에 장의 기능은 고대사회부터 존재하
                  였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4)
                    고려시대의 시장은 크게 방시(坊市), 호시(互市), 향시로 구분할 수 있는데 방시(坊市)는 신라의 경
                  시와 유사하며 호시는 외국인과의 거래가 행해진 모든 장소를 총칭한다. 경시는 상설시장이었으며,

                  호시는 상황에 따라 열렸던 비정기시장, 향시는 대체로 정기시장이었다.

                    이처럼 장시는 상업의 핵심으로 오랜 역사 동안 민중의 삶 속에서 존재해왔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의 장시(場市)는 조선시대 때부터 본격적으로 발달되었다고 볼 수 있다.  조선전기에는 주로 장문(場
                  門), 향시(鄕市)라고도 불리었던 장시는 15세기 후반 전라도에서 시작되어 16세기 중반 이후 충청도

                  와 경상도에 전파되었다. 성종 4년(1473년) 신숙주의 발언에 따르면 연이은 흉년으로 전라도 지방의

                  백성들이 스스로 모여서 시포(市鋪)를 열고 장문이라 불렀는데 사람들이 이에 힘입어 보전하게 되었
                  다고 하였다. 호조는 전에 없던 일이라 금지하기를 요청했으나, 지방관은 금지하지 말기를 청하여 장




                  1) 『시장』, 한국민족문화대백과.
                  2) 『장시』, 두산백과.
                  3) 이 해에 “처음으로 서울에 시장을 열어 사방의 물화를 통하게 하였다(初開京師市 以通四方之貨).”라고 기록되어 있다.
                  4) 화성시, 『화성시사』,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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