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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대 대통령선거 후보별 전국ㆍ지역 득표상황

                                                                 후보자별 득표수
                    시도명      선거인수      투표자수      투표율       자유당      민주당              무효투표수      기권수
                                                                               계
                                                           이승만      조병옥
                     전국      11,196,490  10,862,272  97.0  9,633,376     0  9,633,376  1,228,896  334,218
                     서울      1,035,916  948,339     91.5   684,146       0    684,146  264,193   87,577

                     경기      1,343,318  1,308,328   97.4  1,139,927      0  1,139,927  168,401   34,990
                    화성군        93,734    90,392     96.4    77,927       0    77,927    12,465    3,342



                                                제5대 부통령선거 후보별 득표상황

                     정당명       성명       성별    나이    본적     직업          학력           경력         득표수
                     자유당       이기붕      남      63   서울     민의원     미 데이버대 졸       국방부장관       8,337,059

                     민주당       장면       남      61   서울     무직      뉴욕맨해튼대 졸        부통령        1,843,758
                     통일당       김준연      남      65   전남     민의원     독일베를린대 졸       법무부장관         249,095
                   여자국민당       임영신      여      60   서울     교육자      미 가주대 졸       상공부장관          97,533





                  2. 제2공화국



                  1) 제4대 대통령 재선거

                    제4대 대통령은 4·19혁명으로 제2공화국이 성립된 후 1960년 8월 12일 국회에서 선출됐다. 3·15

                  부정선거를 획책했던 자유당정권은 4·19혁명 앞에 무너졌다. 학생과 시민들의 전면적 저항에 직면
                  하여 서울과 5대 도시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면서 버텼던 자유당정권은 국무위원 전원 일괄사표, 부

                  통령 장면의 대통령하야촉구 및 사임, 그리고 이승만의 하야 순으로 이어지면서 장기집권의 막을 내
                  렸다. 이어 3·15부정선거와 관련하여 이기붕·최인규 등 자유당의 핵심 정치인들 외에 화성군 갑구

                  출신 국회의원 손도심 등 11명이 의원직을 상실했다.
                    4월 25일에는 외무장관 허정이 대통령 권한대행이 되어 과도내각을 수립했다. 6월 15일에는 우리

                  나라 최초의 내각제 개헌안을 확정 짓고, 7월 29일 양원제 하의 제5대 국회의원선거와 초대 참의원
                  의원선거를 실시하였으며, 1960년 8월 12일 민의원과 참의원 합동회의에서 재적의원 263명 중 259
      오산시사
                  명이 출석하여 1차 투표에서 윤보선이 208표를 얻어 제4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구파인 대
                  통령 윤보선은 구파 총리를 기용하는데 실패하여 신파의 장면 총리를 지명하여 인준받음으로써 새

      제           공화국의 여당은 집권과 동시에 분열하는 결과를 낳았다. 결국, 제2공화국은 대중혁명의 역사적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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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           과를 살려내지 못하고 군부쿠데타의 길을 열어주는 역할을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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