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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둥과 대들보로 쓰일 목재는 충청도 안면도에서 바람에 쓰러진 나무를 갖다 쓰고, 부족한 것은 강                                        155
                  원도의 국유림을 가져와 사용하였다. 문루에 쓸 큰 느티나무는 전라도의 깊은 산지에서 구해왔다. 철                                          역사

                  은 각 지방 감영이나 특정 지역에서 공납으로 충당하였으며, 벽돌과 기와는 성역소에서 가마를 마련                                            /  유적
                  해 직접 구워냈다. 이외에 부족한 자재는 상당 부분이 민간 상인에게서 매입하였다. 써가래용의 목재

                  와 송판의 경우 전량 민간에서 구입하였고, 철물의 일부나 단청에 필요한 뇌록(磊綠)과 같은 특수한                                          · 유물
                  물품 역시 민간 상인에게 의존하였다. 화성 축성 공사는 이런 민간 상인들을 통한 물품이 확보되었기

                  때문에 빠른 시간에 공역을 마칠 수 있었다.
                    건축 자재와 부재의 원활한 조달이 가능해야만 인건비를 포함하는 공사비용을 절약할 수 있었고,

                  계획한 기간 내에 성곽을 완공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공역기간을 줄인다는 것과 동시에 그만큼의
                  경비가 줄어드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건축 세부 자재의 표준화는 화성 건설의 공사기간을 단축

                  시키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목조 건물의 세부 부재들을 가공해 놓았다가 공사가 시작되면 한
                  꺼번에 조립해 나가는 방법이 선택되었다. 통일된 규격은 공사과정에서 나오는 오차를 줄어들게 함

                  으로써 공사의 효율성도 높여주었다.



























                                  그림 8. 방화수류정 [동북각루] - 『정리의궤』, 「방화수류정도」와 현재 모습





                    성벽이나 화성의 주요 건축물에 이용된 벽돌 역시 건축 부재의 표준화가 이루어졌다. 화성에는 성
                  벽 외에도 방화수류정, 동북공심돈, 봉돈과 같이 벽돌을 이용하여 세련된 조형미를 보여주는 건축물

                  이 세워졌다. 화성 건설에서 다량의 벽돌이 사용될 수 있었던 것은 송나라 서적인 『천공개물(天工開
                  物)』의 가마제도에 따라 벽돌 가마가 만들어졌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당시까지만 해도 벽돌이라는 부

                  재는 조선의 장인들에게 생소한 건축부재였다. 하지만 화성 건설 기간 동안 진취적이고 실험적인 장
                  인들의 노고에 의해 점차 벽돌 굽는 솜씨가 익숙해지게 되었다. 화성 건설 기본 계획인 축성안에 따

                  라 일정한 형태로 구워진 벽돌을 이용함으로써 공사비용의 절감과 함께 공사 기간도 단축시킬 수 있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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