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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다. 기존의 전통적인 장시(場市)를 해체시키며 기차역을 중심으로 새로운 상권이 부각되었고,
                  그 상권은 고스란히 일본인을 중심으로 재편되어갔다.

                    기차역을 개설함으로써 조선인들의 넓은 토지를 강제로 수용하여 다시 일본인들에게 불하함으로
                  써 역세권은 일본인들이 장악하였다. 이는 전통적인 도시와 장시(場市)를 철도역을 중심으로 재편하

                  면서 일본인이 새로운 상권을 장악하여 큰 도매업을 하고 조선인들은 그 아래 종속적인 소매업을 하
                  게 만들어 식민지 경제체제를 확고히 하는 기제가 되었다. 오산에 기차역이 생기면서 기존의 장시의

                  번성에 더하여 도회지로 발전해 갔다. 경부철도의 기차 정거장이 위치한 수원·오산·평택은 남쪽으
                  로 가는 제주로(濟州路)의 전통적인 대로(大路)의 혜택에 더하여 기차운송으로 인한 수혜를 받을 수

                  있었다.
                    경부철도가 오산을 지나면서 오산장터의 땅값이 오르기 시작했다. 이에 1908년 봄 오산 장터를 소

                  유하던 서울 거주 조모씨가 그 장터를 일본인에게 방매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에 장터에서 일하던
                                                                                               29)
                  많은 조선인들은 방매하려거든 일본인이 아니라 조선인에게 팔아달라는 호소를 하고 있다.  신문은
                  전 판서 조종필((趙鐘弼)이 땅 주인으로 보도했으나 실제 주인은 조종필이 아닌 다른 조씨라는 정정
                  보도를 내고 있다.     30)




































      오산시사




      제

      2                                             그림 6. 경부철도 노선도
      권


                  29) ‘何特賣日’, 『대한매일신보』 1908. 3. 6.
    192           30) ‘姓同爲嫌’, 『대한매일신보』 1908. 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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