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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일부 6층)을 새로 축조하여 상품 판매뿐만 아니라 5층에 큰 홀과 갤러리를 두어 문 화적 볼거리까지 겸비하는 명실상부한 부산의 백화점으로 거듭났다.
하지만 뒤늦은 백화점 체제로의 전환 때문인지 공격적인 신축, 증축, 개축이 본점과 지점 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뒤늦은 전환은 오히려 경영에 불리한 측면을 강하게 나타냈다. 그러한 모습은 새로 신축한 부산지점의 전시행사의 내용을 통해서도 잘 드러난다. 1937 년 신장개업한 부산지점은 1층에는 식료품, 조선토산, 화장품, 장신구, 신발, 신사양품, 연 초, 상품권, 관광안내소를 두고, 2층에는 부인아동신사복, 부인아동용품, 운동용품을 진 열했으며, 3층에는 오복류 일반, 4층에는 가구류, 잡화, 악기, 전기기구, 시계, 귀금속, 사진 기를 진열했고, 5층에는 문방구, 완구, 대식당, 행사회장을 두었고, 6층에는 낚시도구, 도 예소도구, 옥상 전망대(부산항을 한눈에 조망)를 배치했다. 신축 건물 중 5층이 주로 전시 와 전람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즉, 5층에는 그랜드 홀 또는 갤러리가 있었고 전시 공간이 더 필요할 경우 6층의 일부까지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문화적 전시 및 행사는 이른바 서구식 백화점 경영방식의 일부로 도입되었지만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의 발발에 따른 시국선전의 전시 및 교육장으로 변모했다.
미나카이의 5층 그랜드 홀과 갤러리에서 전시된 전시회 및 전람회는 모두 전시체제를 강 조하고 총후 신민으로서 갖춰야 할 신체 및 정신을 교육하는 정치 군사적 선전 및 교육장 으로 활용되었다. 이전까지 계급과 민족적 차별에 의해 거의 향유할 수 없었던 번화가의 상점과 백화점 등은 전시체제기가 되자 점차 전쟁 동원의 목적 하에 조선인들의 삶 속으 로 들어왔다고 할 수 있다. 즉, 일제의 내선일체 강조와 황국신민화사업 등은 그간 향유 하지 못하고 배제되거나 차별받았던 도시문화를 일본인과 함께 향유할 수 있도록 만들 었다. 하지만 이는 자본주의 하의 도시문화가 아니라 전쟁 하의 도시문화이며 이를 통해 수많은 조선인들의 인적, 물적 동원을 위한 선전과 교육의 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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