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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그리고 너무나도 편리한 기계들 때문에 우리의 인내심과 소중한 기억들이 정보들과 기계들에게 빼앗겨 버렸다. 오늘날 사소한 것에서 소중한 것까지 우 리가 알고 있던 것들이 우리에게 사라져 가고 있다.
느림과 끈기, 관찰과 발굴
과거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지금 현재는 분명히 과거를 기억하고 있다. 그렇기에 고고학이나 천문학은 현재 우리 눈에 보이지만 지금은 알 수 없는 것들을 연구하고 탐구하는 학문이다. 고고학은 과거의 흔적들을 발굴하 고, 그것들이 의미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면서 끊임없이 발굴한다. 고고학자 는 말없는 역사를 밝힌다. 천문학은 우주를 관측하는 학문이자 별이나 행성과 같은 천체 등의 법칙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다른 학문들도 그렇지만, 두 학문 에게 주된 작업은 끊임없는 관찰이다.
천문학자만이 천문학을 하는 것도 아니고, 고고학자만이 고고학을 연구하는
것도 아니다. 누구든지 자신이 원하기만 한다면, 천문학자도, 고고학자도 될 수 있다. 자신이 원하지 도 않았지만, 의도치 않게, 천문학자가 또 고고학자가 되기도 한다. 분야는 다르지만 모두가 과거를 연구하는 일을 한다. 이 영화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어디에서 왔고,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느냐? 어디에서 왔느냐가 핵심입니다. 늘 인간 문명의 근본 문제였죠.” “과거는 천문학자의 주요 도구입니다.” “같이 과거를 연구하는 고고학자도, 역사가도 같은 일을 하는 거고, 지질학자도 마찬 가지입니다. 다 같습니다.”
아타카마 천문대 근처 광활한 어느 곳에 폐허가 있다. 이곳은 원래 19세기의 노예적 광산업을 하던 곳이었고, 나중에 피노체트 독재정권 최대의 강제수용소가 된 곳이다. 이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고 문을 당하고 학살당하며, 생매장되기도 했다. 자신이 원하지도 않았지만, 수용소에 있던 사람들은 별을 보면서 천문학자가 되었다. 그에 반해서 자신이 의도치 않았지만, 독재 정부에게 학살당한 가 족들은 고고학자가 되었다. 그들은 천문학자가 아니면서 천문학자이고, 또 고고학자가 아니면서 고 고학자이다. 그들이 아타카마 사막에 가서 고고학자가 된 것은 당연하다. 그곳 어딘가에 죽은 가족 이 살아남은 가족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죽은 자는 대부분 남성들이었고, 살아남아서 가족을 발굴하는 자들은 대부분 여성들이다.
이 여성들은 허허벌판의 사막에서 17년 이상 삽으로 막대기로 심지어 맨손으로 땅을 뒤집고 파면서 가족의 흔적과 유해를 찾아다닌다. 그 중에서 일부를 찾은 사람도 있는 반면에, 찾지 못한 사람들도 있다. 이들이 찾는 것은 단순히 자신의 가족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그들이 찾는 것은 자 신의 가족이자, 칠레의 근현대사이며, 나아가 인류의 역사이다. 게다가, 그들의 발굴은 어둠속에서 빛을 밝히는 작업이자 나아가 그 빛으로 우리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일이다.
모든 생명의 근원은 빛이다. 빛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세상을 밝혀주는 햇빛, 달빛, 별빛뿐만 아니 라 금빛, 은빛, 옥빛 등등 우리는 아주 많은 반짝이는 것들을 볼 수 있다. 밤이 햇빛을 가리더라도 나 머지 다른 불빛들을 가릴 순 없다. 독재 권력이 빛을 가리고 역사를 덮을지라도, 저 여성들의 삽에 서 나온 빛과 막대기에서 나온 빛 그리고 맨손에서 나오는 빛을 막을 수 없다. 그리고 그 열망과 끈 기도 막을 수 없다. 그들에게 인류에 대한 의무, 역사에 대한 책임, 빛을 향한 탐구가 있는 것이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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