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2 - 은혜의 70년, 여호와께 돌아가자 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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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성동교회 봉헌


















               10          대성동 마을은 임진각에서 10여km, 군사분계선 바로                                                                            북한 선교의 전초기지로서 현재까지 그 역할을 다하고 있다.
      102      STORY                                                                                                                대성동교회 봉헌 예배  한국CBMC 전국대회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추진 건립한 대성동교회는                     103

                           남쪽 판문점에서 500여m 떨어진 곳에 자리했으며 북
                           한의 기정동 선전 마을과 함께 한반도 분단 상황을 적                                                                                    리 점화 예배를 가졌다. 1975년 2월 23일에는 대성동 마을 주민 17명

                           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마을 북쪽 끝 지점에서는 남북                                                                                   과 미8군 민정담당관 로쉬 씨 등을 서울에 초대해 영락교회에서 대예
               으로 흐르는 사천강 너머로 불과 200여m 떨어진 곳의 북한군 초소가                                                                                       배를 함께 드린 후 오찬을 나누면서 교회 건립에 관해 협의하는 시간                           제2장  |  기독교 부흥과 CBMC 사역 지평 확장

               육안으로 보일 만큼 가까워 북한군과 육성으로도 대화가 가능할 정도                                                                                         을 가졌다. 이날 모임에서 대성동 마을 주민들은 교회 건립에 적극적
               다. 한국CBMC는 1976년에 북한과 가장 가까운 마을인 대성동 마을                                                                                      인 자세를 취했고, 유엔군 역시 마을 주민들의 뜻을 받아들여 교회 건

               에 교회를 세웠다. 이 사역에는 한국CBMC가 출범한 이후 변함없이                                                                                        립에 동의했다.
        제2부  |  비즈니스 세계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한다
               추진하고 있는 북한 복음화 사역의 첫걸음이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담                                                                                         1975년 10월 21일에 교회 기공 예배를 드린 후 건축에 착공해 1976년
               겨 있다. 민간인 통제선 안에 위치한 대성동 마을에 교회를 세우는 사                                                                                       4월 20일 상량 예배, 8월 14일 교회당 완공 끝에 10월 22일 정오에 성
               역은 통일촌교회 이세환 목사의 제안을 수용한 것으로써 제2차 한국                                                                                         전 봉헌 예배를 드렸다.

               CBMC 전국대회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추진했다. 북한 사역에 열정을                                                                                        1975년 3월 30일 한국CBMC의 기도와 주선으로 여의도에서 처음 드
               가진 최창근 회장이 건축위원장, 부위원장에 황종원, 재정은 최태섭,                                                                                        린 부활절 연합예배 헌금과 한국CBMC 회원들의 헌금으로 건립한 대

               서기는 황위섭 총무가 맡았다. 실무는 한준식 사무국장이 담당했다.                                                                                         성동교회는 총 109㎡(33평) 남짓한 규모의 건물로 1,200여만 원의 공
               대성동 마을에 교회를 세우고자 한 이유는 첫째 대성동 마을 주민에게                                                                                        사비가 투입되었다. 북쪽을 향한 복음 방송을 위한 스피커 장치와 화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며, 둘째 북한 동포에 대한 선교 전초기지와 평                                                                                        해와 구원을 상징하는 십자가 종탑 높이가 23m나 된다.
               화 통일을 위한 기도처의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서였다.                                                                                                대성동교회는 성전 봉헌 예배 후 대성동 주민과 군인들을 복음으로 섬

               민간인 통제 구역에 교회를 건립하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았다. 우                                                                                        기기 위해 통일촌교회 이세환 목사가 자원해 섬기다가 1994년 윤호
               리 정부의 승인은 물론이고 유엔군의 허락이 있어야만 했다. 한국                                                                                          영 목사가 부임하여 섬겼다. 1976년 8월 대성동교회로 정했던 명칭은

               CBMC는 유엔군과 대성동 주민의 관계 증진, 북한 주민에게 복음의                                                                                        2000년대 초 판문점교회로 바꿨다. 2007년에는 교회 증·개축을 진
               빛을 전하고자 1974년 12월 22일에 대성동 마을에서 크리스마스트                                                                                       행했으며, 이 역시 한국CBMC가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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