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1 - 은혜의 70년, 여호와께 돌아가자 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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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CBMC,
 동북아시아 이사국 진출
















 4  1950년대는 국지적이기는 했으나 지역의 특성을 살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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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활발히 활동하던 CBMC가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점
 차 침체해 그 힘을 잃어갔다. 창립 주역들의 사망과 생활

 근거지 이동, 국내외 조직의 연계 결여 등이 원인이었는
 데 그보다 더 중요한 요인은 CBMC에 대한 이해 부족이었다. CBMC                                                           제1장  |  고난의 시기에 찾아온 하나님의 부르심

 회원들의 인식이 기독교인들의 친목 모임 정도에 그쳤기 때문에 시간
 이 지나면서 점차 힘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수원지회를 방문한 미국CBMC 왈도 예거 회장   왈도 예거 회장 방문 시 통역을 맡은
                              김장환 목사(사진 맨 왼쪽)는 한국CBMC의 국제 무대 진출에 기여했다.
 CBMC 이념과 그 사명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을 뿐 아니라 자료를 찾
 제2부  |  비즈니스 세계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한다
 아보려는 노력조차 없었다. CBMC의 전도 전략 개념 역시 파악하고 있  한국CBMC 출범 이듬해인 1968년 10월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제31
 지 못한 데서 오는 전도 부진과 회원 재생산 실패가 위기를 자초했다.    차 국제CBMC대회에는 한국CBMC 대표로 황성수 회장이 참석해 한
 서울, 부산, 대구, 수원 등 각 CBMC는 조직의 명맥 유지에 그칠 정도  국CBMC 출범 소식을 대회 참가자들에게 알렸다. 황성수 회장은 대회

 의 활동뿐이었으나 다행인 것은 서울과 수원CBMC가 국제CBMC 본  를 마치고 난 후 귀국할 때 CBMC 관련 자료를 가져와 회원들과 공유
 부와 꾸준하게 관계를 유지해왔으며, 국제CBMC와의 교류를 통해 국  함으로써 한국CBMC 회원들의 인식 변화를 이끌었다.

 제CBMC가 보유한 자료와 전도 노하우를 전수받을 수 있는 통로를   한국CBMC는 제31차 대회 이후 계속해서 국제CBMC대회에 대표단
 확보했다는 점이다.                        을 파견해 국제CBMC 내에서 한국CBMC의 존재감을 강화했다. 1974

 1966년에는 김장환 목사의 주선으로 수원CBMC 이정환 회장이 한국  년 제37차 국제대회에서는 한국CBMC가 동북아시아 지역 이사국으
 CBMC 역사상 처음으로 국제CBMC대회에 참가해 CBMC가 어떤 조  로 선출되었으며, 아울러 황성수 박사가 국제이사로 추대되었다. 또한

 직이고, 어떻게 활동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왔다. 수원CBMC에서는 이  1976년 제39차 국제CBMC대회에는 김인득 회장을 비롯한 15명의 대
 정환 회장 이후 조준구 박사, 노용희 박사 등이 수원CBMC 대표로 국  표가 참석해 제1차 CBMC세계대회를 서울에 유치하는 데 결정적인

 제CBMC대회에 꾸준히 참석해 한국의 CBMC를 소개했다.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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