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6 - 은혜의 70년, 여호와께 돌아가자 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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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한국CBMC 출범
3 서울CBMC 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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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도발로 발발한 한국전쟁은 1953년 7월 휴전에 들
어갔다. 총성이 사라지자 부산에 자리 잡았던 임시 수도
는 서울로 환도되었고 정치, 경제, 종교, 교육, 문화 등 사
회 전반의 중심 또한 다시 서울로 옮겨졌다. 제1장 | 고난의 시기에 찾아온 하나님의 부르심
부산에서 출범한 CBMC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황성수 회장을 비롯한 국제CBMC대회에 참석한 수원CBMC 조준구 회장 귀국 환영식 수원CBMC는 1966년 이정환 회장,
1967년 조준구 회장이 국제CBMC대회에 참석하는 등 국제CBMC 본부와 활발하게 교류했다.
장수철, 강민구 씨 등 CBMC 회원들이 서울에서 모여 조직 정비를 협
의했다. 이 자리에서 회원들은 기독학생신앙동지회, 기독청년면려회 는 한국스레트공업(주) 강민구 사장을 선임했으며, 부회장으로는 노정
제2부 | 비즈니스 세계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한다
출신 청년층을 규합하기로 결의하고 전도, 양육에 중점을 둔 사역을 현, 김현산 회원을 선임했다.
펼치기 시작했다. 부산에서 서울로 자리를 옮긴 CBMC는 새로 가입한 우리나라 CBMC 사역의 기초를 닦은 황성수 회장은 명예회장으로 한
회원들과 함께 매월 한 차례의 월례회를 이어가며 도약을 준비했다. 걸음 물러나 서울CBMC가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맡았다.
1959년과 1960년에 연 두 차례 전도 집회는 서울CBMC가 출범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59년에는 새문 수원CBMC 출범과 국제CBMC와의 교류
안교회에서 국제CBMC 맥클리 총무가 참석한 가운데 전도 집회를 개 1965년 2월에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수원CBMC가 공식 출범을 했
최했으며, 1960년 8월에는 국제CBMC 왈도 예거 회장의 내한을 맞아 다. 수원CBMC는 출범할 당시 우리나라에 있는 지회 중에서 유일하게
전도 집회를 가졌다. 미국CBMC 소속이었다. 수원CBMC가 기존 지회와 다른 출발을 하게
두 차례의 전도 집회에 국제CBMC의 핵심 인물인 총무와 회장이 차 된 데는 김장환 목사의 영향이 컸다.
례로 참석한 것은 우리나라의 CBMC 사역에 국제CBMC의 관심이 지 김장환 목사는 한국전쟁 중에 만난 미군 칼 파워스 상사의 주선으로
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어린 나이에 아무 연고도 없는 곳에서 학업
국제CBMC의 관심과 서울CBMC 회원들의 열정적인 사역으로 1965 을 이어가는 것이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었다. 힘들게 유학 생활을 하
년 서울CBMC 출범이라는 열매를 맺었다. 서울CBMC 초대 회장으로 고 있을 때 왈도 예거 장로를 만나게 되었고, 방학이면 그의 집에 기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