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4 - 은혜의 70년, 여호와께 돌아가자 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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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기독공보>에 소개된 CBMC
경애하는 황 형
우리는 동경위원회 위원장으로부터 황 형이 잃은 영혼을 구원하려는 열의
에 넘치는 기독교인이며, 그렇기 때문에 부산기독교실업인회를 결성하기
위하여 연락할 분이라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우리와 관련된 위원회가 동경
에서는 거의 2년 동안 활동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분명히 그들의 증거
와 그들 상호 간의 교제를 축복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오사카에도 위원회가 조직되었으며, 교토, 후쿠오카, 나고야, 삿포
로 등을 포함하여 다른 도시에도 위원회를 조직하려는 이들이 활동하고 있
습니다. 주님께서 그들을 인도하시어 위원회를 조직하게 하시고 각 위원회
2 <기독공보>는 1952년 7월 21일 자 1면에 CBMC를 소개 로 맞을 뿐 아니라 그들의 생활의 주로 모시게 되기를 우리는 기도하고 있
74 의 증거를 통하여 많은 사람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알게 되고 구주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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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기사를 게재했다. 기사 내용으로는 국제CBMC의
습니다.
연혁, 설립 목적, 교회와의 관계 등 CBMC 관련 정보와
이 서신과 함께 추천된 조직 방법과 회원 신청 양식과 회원카드를 동봉합
더불어 국제CBMC의 도널드 맥도널드 총무로부터 받은 니다. 따로 여기에 관한 서류를 부송하오니 귀국에 이러한 형식의 증언을
편지 전문이 실렸다. 조직함에 있어서 귀형과 협력하리라고 귀형이 믿는 한국 기독실업인들에 제1장 | 고난의 시기에 찾아온 하나님의 부르심
편지에는 일본 동경 CBMC 회장이 국제 본부에 황성수 박사를 한국 게 배부해 주시기 바랍니다. (중략)
때는 바로 귀국 기독실업인에게 있어서 어려운 시기인 것을 우리는 깨닫고
에서 CBMC를 창립하는 데 적임자라고 추천한 것과 우리나라가 전쟁
우리 기도 중에는 몇 번이고 여러분을 기억하여 하나님께서 아직도 여러분
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에 대한 위로와 황성수 박사가 CBMC 조직에
을 붙드시고 그의 뜻이 어떠한 정치적 문제라도 초월하시기를 빌며 하나님
제2부 | 비즈니스 세계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한다
힘써줄 것을 당부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또한 편지와 함께 CBMC 관
께서 아직도 보좌에 앉아 계시기 때문에 그의 뜻을 이루실 것을 믿는 바입
련 자료를 동봉하니 잘 활용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도 쓰여 있었다. 니다.
황성수 박사와 세실 힐 대령의 만남은 우리나라 CBMC 역사의 출발 복음 안에서 교제된 총무 도널드 맥도널드
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중요한 만남의 배경을 이해하려면
<기독공보>의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을 도모해줄 것을 요청했다. <기독공보>를 살리자는 말에 황성수 박사
<기독공보>는 1946년 1월 17일 김춘배 목사가 문서 선교의 희망을 가 는 권현오 목사와 함께 1951년 12월 26일 이승만 대통령을 찾아가 신
지고 창간했다. 하지만 창간 1년 만에 재정난을 겪으며 폐간의 위기를 문 재창간을 제안해 허락을 받아냈다. 그리하여 <기독공보> 판권은 권
맞았는데, 영락교회의 김응락 장로가 사재를 털어 인수하면서 신문 발 현오 목사가 가지고, 황성수 박사가 부사장직을 맡으면서 재창간 실무
행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 <기독공보>의 재정난은 이후에도 계속되 업무를 지휘하게 되었다. 황성수 박사가 <기독공보> 재창간 작업에 몰
어 토마스 선교사 순교기념사업회, 대한예수교장로회가 인수해 명맥 두하고 있을 때 부산에 주둔하던 미군의 세실 힐 대령을 만나게 되었
을 유지했지만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결국 휴간할 수밖에 없었다. 고, 그의 소개로 CBMC를 알게 되었다. 이후 국제CBMC 본부 도널드
문서 선교의 꿈이 사라지는 것을 안타까워했던 박형룡, 김치선, 권현 맥도널드 총무로부터 황성수 박사가 중심이 되어 한국에 CBMC를 조
오 목사와 노정현 장로가 황성수 박사를 찾아와 <기독공보> 재창간 직했으면 한다는 편지를 받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