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1 - 은혜의 70년, 여호와께 돌아가자 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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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한국전쟁과 CBMC
학계의 손인식 장로, 교육계의 소동렬 장로, 법조계의 변호사 임문석
장로, 이중근 장로, 금융계의 이성원 장로가 있었다.
신우회 회원들은 손인식 장로 자택에서 힐 대령이 참석한 가운데 대구
CBMC 창립총회를 갖고 초대 회장으로 손인식 장로를 추대했다. 그리
고 부회장으로는 임문석 장로, 서기 겸 총무에 소동렬 장로를 선임했다.
1 우리나라에 CBMC가 처음 소개된 것은 한국전쟁으로 대구CBMC는 출범 이후 매월 대구 동문교회에서 정기 모임을 가졌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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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 야유회와 회원 가정 예배 등 열성적으로 CBMC 활동을 펼쳤다. 또
온 국토가 전화에 휩싸여 있던 1951년이다. 일제강점기
를 벗어난 지 불과 5년 만에 발발한 전쟁으로 또 한 번 큰 경주CBMC와 교류하며 의료 선교, 병원 전도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시련을 겪던 때였다. 일제가 남기고 간 적산 기업들이 경
제의 근간을 이루고 있었는데 이마저도 전쟁으로 폐허가 되고 말았다. 경주CBMC 제1장 | 고난의 시기에 찾아온 하나님의 부르심
당시 기업인들이 처한 상황은 미국에서 CBMC가 출범할 무렵의 경제 한국전쟁이 한창일 때 포항에는 제18육군병원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
대공황보다 더 처참했다. 전쟁으로 말미암아 수도를 부산으로 옮겨야 병원에 근무하는 이경화 소령, 김도원 대위, 한영빈 중위는 간호사, 사
했고, 국민 대부분은 정신적 공황 상태에 가까웠으며, 생계가 막막하 병들과 더불어 부상 군인을 돕기 위한 신앙동지회를 조직했다. 이 모
제2부 | 비즈니스 세계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한다
다 보니 사리사욕을 채우기 급급했다.
이러한 혼란한 상황에서 CBMC가 한국 땅에 빛으로 다가왔다. 한국에 대구CBMC 창립총회 세실 힐 대령의 권면으로 창립한 대구CBMC는 창립 이후 의료 선교, 병원 전도 등
열성적으로 CBMC 사역을 펼쳤다.
CBMC가 처음 소개된 것은 1951년으로, 대구와 경주 그리고 부산에서
거의 비슷한 시기에 CBMC 운동이 시작되었다.
대구CBMC
세실 힐 대령이 낙동강 전선에서 활약할 무렵 정해천 대위가 힐 대령
의 통역장교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힐 대령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
였던 정해천 대위에게 CBMC를 소개하고 대구에 CBMC를 조직하자
고 권면했다. 정해천 대위는 대구 신우회라는 기독교 모임에서 함께
활동하고 있던 소동렬 장로에게 이 이야기를 전했다. 정해천 대위와
소동렬 장로는 기왕에 대구 신우회가 있으니 이 조직을 기반으로 대구
CBMC를 조직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당시 대구 신우회 회원으로는 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