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7 - 은혜의 70년, 여호와께 돌아가자 eBook
P. 87

5
                                                                                                  STORY
 제1회 전국대회와 CBMC 비전 공유







                                   1972년 서울CBMC 초청 만찬회 기간 중에 황성수 회장은 서울CBMC
                                   이성재 총무에게 한국CBMC 전국대회를 한국CBMC와 서울CBMC

                                   가 함께 진행했으면 한다는 뜻을 전했다. 이성재 총무 입장에서는 선
                                   뜻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우선 자신이 서울CBMC 총무를 맡은 지 얼

                                   마 되지 않았을뿐더러 한국CBMC 사무국에 장만기 총무가 있었기 때
 5  한국CBMC 황성수 회장은 서울CBMC가 치른 회원 확  문이었다.
 86                                                                                               87
 STORY
                                   황성수 회장의 성품을 잘 알고 있는 이성재 총무는 황 회장이 어렵사
 대 초청 만찬회를 본 후 한국CBMC 전국대회를 개최하
 려는 마음을 먹었다. 미국에서 열린 국제CBMC대회에     리 꺼낸 부탁을 마냥 거절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해 장만기

 참석할 때마다 가졌던 염원이었다.                총무를 찾아가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함께 한국CBMC 전국대회를
 하지만 당시 한국CBMC는 전국대회를 개최할 만한 여력이 없었다. 서  준비하자고 손을 내밀었다. 이렇게 황성수 회장의 의지와 두 총무의                      제2장  |  기독교 부흥과 CBMC 사역 지평 확장

 울CBMC를 제외하고는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 지회가 없었다고 해도   결단으로 제1회 한국CBMC 전국대회가 탄생하게 되었다.
 과언이 아니었다. 수원CBMC는 명맥만 유지할 정도였고, 부산CBMC  한국CBMC 전국대회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재정 문제를 해

 는 그마저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렇다 보니 한국CBMC가 자체적으  결해야 했다.
 제2부  |  비즈니스 세계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한다
 로 전국대회를 준비한다는 것은 언감생심이었다. 한국CBMC 전국대  이성재 총무는 당시 서울CBMC 회장이었던 해동화재 김동만 회장에
 회를 개최하기 위해서는 비교적 잘 운영되고 있던 서울CBMC의 손을   게 한국CBMC 전국대회를 준비하는데 재정이 부족하다는 사정을 이
 빌려야만 했다.                          야기하고 지원해줄 것을 간곡히 부탁했다. 김동만 회장은 한국CBMC

                                   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전국대회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에 공감하고
 제1회 CBMC 전국대회 및 제7회 정기총회   한국CBMC의 염원이었던 제1회 CBMC 전국대회는 김동만 회장 등의 후원과   당시로서는 거금인 50만 원을 후원금으로 기탁했다. 이뿐 아니라 해
 실무 간사들의 노력 덕분에 무사히 치를 수 있었다. 또한 향후 한국CBMC가 성장하는 시발점이 되었다.
                                   동화재 회장 비서실 한편에 CBMC대회 준비 사무실을 제공해 한국
                                   CBMC 전국대회를 준비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한국CBMC는 1973년 9월에 전국대회를 개최하겠다는 계획을 수립하
                                   고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프로그램 기획, 대회 장소와 강사 섭외

                                   등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었으나 얼마나 많은 사람이 참가할 것인
                                   지는 미지수였다. 이성재 총무는 당시 광화문에 있었던 협성여자상업

                                   고등학교 교장 선생님과 친분이 있는 기자로부터 교회 주소 2,000개
                                   를 확보하고, 그곳으로 한국CBMC 소개와 한국CBMC 전국대회를 알
   82   83   84   85   86   87   88   89   90   91   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