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9 - 은혜의 70년, 여호와께 돌아가자 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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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는 내용을 담은 안내문을 제작해 발송했다.          있게 되었다.
 힘들게 안내문을 제작해 발송했지만 결과는 실망스러운 수준이었다.   제1회 전국대회의 주제는 ‘예수 혁명과 산업사회의 장래’였고 메시지

 절반에 가까운 800통이 주소 불명으로 반송되었으며, 안내문을 보고   는 한국대학생선교회 총재인 김준곤 목사, 주제 강연은 숭실대학교 총
 답장을 보내온 것은 단 3통이었고, 그마저 하나는 참여할 사람이 없다  장인 이한빈 박사가 맡았다. CBMC의 밤에서는 한경직 목사가 ‘대전

 는 것이었다. 2,000통의 안내문을 보내서 단 2명이 한국CBMC 전국  환기의 민족 과업 달성을 위한 한국기독실업인과 교회의 역할’이란 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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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회에 참석했지만, 전국의 교회에 한국CBMC의 존재를 알렸다는 것  시지를 전했다. 같은 날 연 제7차 한국CBMC 정기총회에서는 황성수

 은 눈에 보이는 결과 이상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      회장을 차기 회장으로 유임시켰다.
 황성수 회장의 지도력, 국제CBMC가 주관하는 국제대회에 참석해 많  한국CBMC 역사상 처음 개최한 전국대회는 한국CBMC가 성장하는

 은 견문을 넓힌 장만기 총무의 풍부한 기획력, 서울CBMC의 협력에   기폭제가 되었다. 황성수 회장은 CBMC가 실업인과 전문인에게 하
 힘입어 1973년 9월 26일 제1회 한국CBMC 전국대회를 70여 명의 회  나님의 복음을 전도하고, 그들이 하나님을 영접할 수 있도록 양육하                  제2장  |  기독교 부흥과 CBMC 사역 지평 확장

 원이 참석한 가운데 세종호텔에서 가졌다.            는 단체인 만큼 실업인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황성수 회
 이 전국대회를 계기로 한국CBMC는 명실상부한 국가 단위체로서  장은 자신보다 벽산그룹 김인득 회장이 한국CBMC의 중심이 되어야

 의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으며, 지역에 산재한 CBMC가 하나가 되어   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김 회장을 설득했다. 김인득 회장은 이후 한국
 제2부  |  비즈니스 세계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한다
 CBMC 공동의 비전과 한국의 상황에 알맞은 프로그램을 제시할 수   CBMC 이사회가 출범하자 한국CBMC 2대 회장을 맡게 된다.
                                   김인득 회장이 전면에 나서면서 우리나라 재계의 중심 인물들이 한국
 한국CBMC 제7회 정기총회   제1차 CBMC 전국대회와 같은 날 연 제7회 정기총회에서는   CBMC 회원으로 가입하기 시작했다. 한국유리 창업자 최태섭 회장,
 황성수 초대 회장의 연임을 결의했다.
                                   동양주식회사 최창근 회장, 경향신문 편집국장 김경래 회장 등이 이
                                   때 가입한 회원이며, 이들은 한국CBMC의 주축 회원으로 초기 한국

                                   CBMC가 발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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