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4 - 칭의와 성화-김세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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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우리가 성령의 은혜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야지, ‘육신’의 요구를 좇아 살아서는 안 된
다는 것입니다(롬 8장; 갈 5~6장). ‘육신’의 요구를 좇아 사는 것은 사탄의 죄와 죽음의 통
치를 받는 삶이므로, 그러한 삶으로부터 구속을 받아 칭의 된, 곧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사
람이 된, 우리는 하나님의 영의 깨우쳐 주심과 힘 주심을 받아 하나님(의 아들)의 통치에
순종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실존에서 윤리적 선택의 갈림길에 설
때마다 사탄의 죄와 죽음의 통치에 순종하라는 ‘육신’의 요구를 물리치고, ‘하나님의 법’/‘
그리스도의 법’(고전 9:21; 갈 6:2 등), 곧 이중 사랑 계명을 지킴으로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
하라, 또는 그 통치를 대행하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에 순종하라는 성령의
요구를 따라야 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믿음/세례 때 칭의 된, 즉 하나님(의 아들)의 통치
를 받는 사람들이 된 우리는 ‘의의 열매’를 맺어 가는 의인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같은
말을 ‘성화’의 언어로 말한다면, 믿음/세례 때 ‘성도’가 된, 즉 하나님께 바쳐진 사람들이 된
우리는 날로 더욱 거룩해지는 ‘성도’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4) 최후의 심판과 칭의의 완성, 예정과 성도의 견인, 그리고 탈락의 가능성
종말에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 때 우리의 칭의가 완성되어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
고 하나님의 신적 생명, 즉 영생을 얻게 됩니다. 그때 우리가 지금, 즉 칭의의 현재 단계에
서 성령의 은혜를 얼마나 믿음으로 덕 입어 하나님의 통치 또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
스도의 주권에 순종하여 얼마나 의를 이루었는가, 하나님 나라 실현에 있어 각자 맡은 역
할을 어떻게 감당하였는가가 심판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결국 우리의 행위대로 이루어
지게 되는 최후의 심판에서 성령의 도움을 덕 입어 이룬 ‘의의 열매들’과 ‘육신’을 좇아 삶
으로써 얻은 ‘육신의 열매들’의 혼합투성이로 판명이 날 것입니다.
바울은 의를 완벽하게, 즉 ‘책망할 것이 없게’ 이루지 못한 자들이라도 하나님의 예정의 의
지에 의해서,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로 구원을 확실히 얻으
리라고 강조하여, 우리로 하여금 안도하게 하는 동시에 복음을 ‘헛되이 믿고’, ‘육신’을 좇
는 삶을 살아 구원에서 탈락할 수 있다고 엄중히 경고합니다.
예정론/성도의 견인론은 우리의 구원이 시작부터 완성까지 철저히 삼위일체 하나님의 은
혜에 의한 것임을 말하는 교리로서, 그것에 의해 뒷받침되는 칭의론은 칭의의 현재(옛 ‘구
원의 서정’의 언어로 말하자면 ‘성화’) 단계에서 ‘육신’을 좇아 살지 않고 성령을 좇아 살려
는 사람에게 구원의 확신과 안도를 주는 것이지, 그런 삶의 기본자세를 저버리고 방종하는
사람에게까지 구원의 확신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예정론/성도의 견인론에 호소
하며 윤리적 방종을 허락하거나 조장하는 칭의론을 가르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5) 맺는 말: 칭의론에 대한 올바른 이해
여기서 우리는 바울의 칭의의 복음을 예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의 구원론적 표현으로 이해
하고, 칭의를 하나님의, 또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의 관점에서 이해해야
칭의의 전 과정을 통합하여 이해할 수 있고, 특히 ‘은혜로만/믿음으로만’의 구원과 윤리적
요구의 통합을 옳게 할 수 있다는 논지를 전개했습니다. 여러 독자들에게는 이 논지가 생
소하게 들릴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신학과 신앙의 근본 원리로 삼
는 개혁 신학의 후예들, 곧 장로교인들에게는 그들의 신론 또는 기독론을 구원론과 잘 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