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3 - 칭의와 성화-김세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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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됨 또는 회복됨의 뜻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칭의’는 우리를 ‘하나님
의 백성 되게 함’입니다. 그러기에 ‘칭의’는 ‘성화’, 곧 ‘하나님께 바쳐진 사람, 하나님의 소
유된 백성 되기’(고전 1:2; 롬 1:7; 7:14; 15:25, 31; 16:1; 고후 1:1; 9:1; 빌 1:1; 살전 4:7 등)와
동의어인 것입니다.
바울의 칭의의 복음을 ‘예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의 구원론적 표현’으로 이해하고, 칭의를 ‘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하나님의 백성 되기’로 이해하면, 우리는 자연히 우리가 믿음/세례
때 받은 칭의를 하나님 나라에로 ‘들어감’(‘진입’)으로 이해하고, 종말에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석 앞에서 완성될 칭의를 하나님 나라의 완성과 함께 생각하면서, 칭의 된 자의 현재
의 삶을 하나님 나라에 ‘서 있음’(또는 ‘머무름’), 즉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살기, 즉 하나
님의 백성으로서 살기로 이해하게 됩니다.
그러면 칭의의 세 단계들, 즉 과거, 현재, 미래가 통합되어 이해되는 것이고, 우리가 믿음/
세례 때 받은 칭의, 곧 하나님 나라에로 ‘들어감’(구원의 서술—indicative)은 우리의 구원의
완성이 종말까지 유보된 상황 속에서 당연히 현재 계속 하나님 나라에 ‘서 있음’, 즉 하나
님의 통치를 받아야 한다는 요구(윤리적 명령 - imperative)를 내포한다는 사실을 이해하
게 됩니다.
바울의 ‘성화’라는 언어 사용도 똑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믿음/세례 때 ‘성화’된 사
람, 즉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 된 사람(‘성도’)은 이제 날로 ‘성화’되어 가야 합니다. 즉, 하
나님의 통치를 받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야 합니다(롬 6:15~23; 고전 3:17; 6:1~11, 19;
7:34; 고후 1:12; 살 2:12; 3:12~13; 5:21도 참조). 그러니까 ‘칭의’ 뒤에 ‘성화’의 단계가 있는
것이 아니고, ‘칭의’나 ‘성화’나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과거)와 하나님의 백성으
로서 살기(현재)를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의 언어 사용법과는 다르지만 구태여 전
통적인 ‘구원의 서정’의 언어를 고집한다면 ‘성화’는 ‘칭의’의 현재 단계를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이렇게 칭의의 세 단계들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살기, 하나
님 나라의 완성에 참여하기의 뜻으로 이해할 때, 칭의를 ‘성화’와 근본적으로 구분하는 ‘구
원의 서정론’이 가져오는 역효과를 극복하고, 믿음/세례 때 얻는 칭의(과거)를 의로운 삶(
칭의의 현재)과 통합하여 이해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법정적 의미로만 이해하는 칭의론이
의로운 삶을 무시하거나 심지어 방해하는 칭의론이 되기 쉬운 데 반하여, 하나님(의 아들
의) 나라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칭의론은 의로운 삶을 요구하고 가능하게 하는 올바른 칭의
론이 되는 것입니다.
3) 삼위일체적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칭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사도 바울은 이와 같은 칭의가 우리의 선행이나 지혜를 통해 얻는 것이 아니고 전적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것이며, 그러므로 믿음으로만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
합니다. 우리가 믿음/세례 때 얻은 칭의도 하나님이 그의 아들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로 이
루어진 은혜의 구원을 덕 입게 하시되, 그것을 선포하는 복음을 그의 영으로 우리의 마음
을 깨우치고 움직여서 믿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덕 입게 하심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또한
종말에 최후의 심판 때 완성될 우리의 칭의의 완성도 그의 아들의 중보로 말미암아 이루
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현재 우리가 의인, 곧 하나님(의 아들)의 통치를 받는 사람으
로 사는 것도 그의 영의 깨우쳐 주심과 힘 주심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 진리를 가르치면서 함께 강조하는 것은 은혜로 의인 되어 의인의 삶을 살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