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4 - 월간사진 2017년 9월호 Monthly Photography Sep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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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Inside
길을 걷다 현대미술
길을 걷다가 조금만 고개를 돌려도 미술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세상이다. 건축법상 하릴없이 작품을 의무적으로 설치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정부와 기업, 지자
체 등의 후원으로 조성된 것들이다. 거리가 곧 미술관인 셈이다. 최근 몇 달 사이에도 공공장소와 미술이 만나 탄생한 결과물이 속속 공개돼 눈길을 끈다.
에디터 | 박이현 · 디자인 | 김혜미
“신에게는 67점의 작품이 있습니다” 해남 우수영문화마을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재)아름다운맵 그리고 당선된 지자 이야기, 우수영마을의 전통 민속예술을 모티프 삼은 작품들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부산
체가 공동으로 주관하는 ‘마을미술프로젝트’는 예술가들의 일자리 창출과 함께 그곳에 감천마을이나 안동 신세동, 울산 고래마을처럼 예쁘지만 지역성과는 거리가 먼 작품들
거주하는 지역민의 예술 향유 및 지역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해 기획된 사업이다. 여기에 (특히 벽화)과는 분명 차별화 되는 지점이다. 67점의 미술작품이 3년에 걸쳐 마을 입구
는 규정된 미술이 아닌, 그 시대의 사회와 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미술을 만들겠 부터 2km 구간 곳곳에 설치됐다. 입체, 평면, 부조벽화, 영상, 아카이브관, 만화갤러리 등
다는 뜻이 담겨있다. 2009년부터 2015년까지 82곳,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시행한 장르도 다양하다. ‘지붕 없는 미술관’이라는 표현이 딱 어울린다. 명량대첩을 그린 이강
공공미술 12곳, 그리고 2016년 14곳 등 전국 108개 마을이 이 프로젝트를 통해 미술마 준의 <울돌목-바다가 울다>, BQ(김기연, 임도훈)의 <충무공이순신-일부당경 족구천부>,
을로 다시 태어났다. 기실 마을미술프로젝트는 2014년을 기점으로 약간의 변화를 꾀했 정종한의 <난중일기>, 장수익의 <수군 332명 이야기> 같은 이순신을 소재로 하는 작품들
다. 초창기 프로젝트가 전국 각 지역을 골고루 지원하는데 초점을 맞췄다면, 2014년부 이 역시나 제일 먼저 눈에 띈다. 그런가 하면 문재인 대통령의 어린 시절을 보는 듯한 이
터는 지역 범위를 넓히기보다 깊이를 더하는데 중점을 두기 시작한 것이다. ‘선택과 집 강준의 <해남영창> 또한 관람객들의 관심을 끄는 작업이다.
중’을 하겠다는 의미다. 그 대표적인 지역이 바로 ‘해남 우수영마을’이다. 사람들의 참여도 활발했다. 주민 120명과 함께 공공미술 교육과 미술수업을 진행한 덕
해남 우수영마을은 이순신 장군이 명량대첩을 치렀던 울돌목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또 분에 미술의 문턱을 낮출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2년째 운영 중인 ‘마을 해설사’에도 주
한, 강강술래와 부녀농요, 남자 용잽이놀이, 들소리 등 다양한 전통 민속예술을 만들고 민들이 적극적으로 지원을 하고 있었다. 또한, 개막식 당일 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행
전승하는 곳이자 법정스님의 생가가 보존되어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1984년 사에 참여하기 위해 먼 길을 걸어온 어르신들의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마을미술
진도대교 개통으로 마을은 급속히 쇠락했다. 그러던 중 2014년 영화 <명량>의 성공으로 프로젝트의 고민거리였던 주민들의 소극적인 참여가 해결된 것 같아 보여 인상적이었다.
마을은 사람들의 주목을 다시 받게 되었다. 이에 기운을 얻은 주민들은 마을 부흥을 위해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교통 문제와 부족한 편의 시설을 해결해야 할 듯싶다. 사람들을
마을미술프로젝트를 추진했고, 그 결과 해남군은 2015년과 2016년에 마을미술프로젝 오랜 시간 머물게 할 요소들이 미흡하다는 뜻이다. 우수영마을 방문을 적극적으로 권유
트에 당선됐다. 2017년에는 (재)아름다운맵에 ‘우수영마을-공공미술프로젝트’ 사업을 하기 위해선 이런 부족한 점들을 보완해야 할 것이다. 킬러 콘텐츠를 킬(Kill)하는 듯한 움
수탁하여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직임도 걱정이다. 우수영마을은 이순신 장군 외에도 법정스님 생가로도 유명하다. 그런
마을미술프로젝트의 손길이 닿았던 곳을 가본 사람들은 안다. 마을 전체가 갤러리라는 데 최근 생가를 재개발한다는 이야기가 마을주민협의회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낡은 건
것을. 길을 걷다가 여기저기서 예술작품들이 눈에 띄는 건 다반사다. 이번 ‘우수영마을- 물을 유지·보수하는 것이 아닌, 법정스님이 계셨던 당시의 초가집 형태로 조성, 무소유
공공미술프로젝트’의 주제는 ‘소울’이다. ‘정신’ 또는 ‘혼’을 의미하는 소울이자, ‘울돌목 정신을 보여주는 역사탐방의 공간으로 활용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결국 관광 사업을
의 미소’에서 미소의 ‘소(笑)’와 울돌목의 ‘울’을 합친 말로, 문화예술에 대한 자부심과 이 하겠다는 뜻이다. 우려되는 부분은 완성될 경우 생가가 주변 환경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순신 장군 후속으로 자긍심을 갖고 있는 마을 주민들이 직접 선정했다. 공공에 있는 사람 존재로 전락할 것이라는 점이다. 전례를 보더라도 생가 복원이 성공적인 경우는 찾기 힘
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우리만의 미술을 만들겠다는 주민들의 의지가 느껴지는 주제다. 들다. 대부분의 사례가 이질감만 부추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재고가 필요한 시점이
‘우수영마을-공공미술프로젝트’는 이순신 스토리텔링에 ‘선택과 집중’을 한 것처럼 보 다. 무소유의 가르침이 소유라는 근시안적인 욕심에 매몰되는 것은 다시 쌓아올리고 있
인다. 마을 전체가 마치 영화 <명량>을 보는 듯하다. 이순신 장군과 주민들의 삶을 담은 는 우수영의 금자탑을 허무는 것과 다름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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