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2 - 월간사진 2018년 1월호 Monthly Photography Jan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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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를 할 때마다 제목이 [Re]:, [Re]:[re]:로 바 다. 기계적이고 기술적인 것이다. 한 컷의 필름 위에 존
Yun Hojin Re:는 인터넷에서 소통할 때 정보가 오고 가는 아이콘 재하던 이미지가 스캐너를 통해 디지털화(비물질화) 되
뀐다. 무슨 의미인가?
고, 소프트웨어와 결합하여 컴퓨터라는 가상공간 안에
- 을 참고한 것이다. 전시를 할 때마다 작업 정보가 전달 서 끊임없이 이동하다가 정보가 더해지면, 다시 종이
다른 방식으로 보기 되고 있다는 의미다. 앞으로도 [Re]:[re]:[re]… 이런 방 위에 나타나는 과정을 머릿속에 그려본다면 이해가 쉽
식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Reply(대답), Reconstruct(재 다. 이러한 사진을 인식하는 방법과 사진이 갖고 있는
현), Representation(표현) 등을 내포한다. 진실성에 대해 탐구하는 것이 작업의 핵심이다. 이미지
한국에선 보기 힘든 유형의 작업이다. 를 만들어내는 부수적인 것들, 카메라와 프린트, 관객
아날로그 사진을 공부하다가 디지털로 전환된 세대다. 등이 주된 소재로 등장한다.
사진이란 매체를 두 번 배운 셈이다. 아날로그 사진에 인식하는 방법, 사진이 갖고 있는 진실성에 대
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필름이다. 그런데 디지털로 넘어 한 작업이라면?
오면서 필름이 사라져버렸다. 실제 있어야 할 게 없어 오브제가 카메라 옵스쿠라를 통하면 상(像)의 상하좌
지니까 미디엄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 미디엄에 대한 우가 바뀐다. 이때 사진가는 오브제의 모습을 상상하며
메타 작업, 다시 말해 ‘매체 연구’와 맞닿아 있는 작업이 머릿속에서 상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 이 과정에서 실
라고 생각하면 된다. 1970년대 후반~1980년대 초중 재하는 오브제와 머릿속에 존재하는 오브제 사이에 간
반에 태어난 북미 세대는 이런 작업을 많이 하고 있다. 극이 발생한다. 여기서 착안한 작업이 <Upside Down>
작업의 모티프가 궁금하다. 이다. 사용자의 선택이나 편집 없이, 기계적인 요소만
산타모니카에서 일몰을 보던 중이었다. 관광객들에게 으로 대상을 인식하는 방식에 간섭을 줄 수 있다는 것
둘러싸여 사진을 찍던 중 어떤 사람이 “사진 같다!”라 을 의미하는 작업이다.
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순간 귀를 의심했다. 실재의 공 <Perspective Study>는 원근법에 관한 작업이다. 카메
간에서, 실재를 재현한 사진과 실재 대상을 비교하다 라는 어떻게 르네상스 원근법을 재현하는지에 대한 의
니. 그때부터 ‘사진 같은 실재’란 무엇인지 생각했던 것 문에서 시작됐다. 프레임 안에서 3차원의 공간을 인지
같다. ‘실재와 사진의 경계가 흐려지는 지점’, ‘실재의 할 수 있는 선들을 배제시켰다. 좌표축으로 설명하자
기준이 경험보다는 시각감각에 의존하는 오늘날 이미 면, x, y, z축을 구분할 수 있는 요소들이 사라진 것이다.
지 지위에 관한 이야기’, ‘인터넷 이미지를 인식하는 방 입체가 평면으로 바뀌니 위치정보를 정확히 알 수 없
법’ 등에 대해서. 또한, 돈 드릴로(Don DeLillo)는 <화이 다. 게다가 작업에 사용한 화려한 패턴의 식탁보가 시
트 노이즈>에서 머릿속에 어떤 실재를 재현한 이미지 선을 혼란시킨다. 이로 인해 사진을 보는데 있어 상상
가 각인되면, 아무리 사진을 찍는다 한들 색다른 재현 할 수 있는 여지가 사라져버린다. 이는 사진 속 전경과
이 나오지 않고, 이미 찍힌 헛간의 아우라만 강화시켜 배경, 피사체의 관계를 생각해보게끔 한다.
준다고 말한다. 실재를 보기 힘들다는 뜻이다. 이를 반 스톡 사진을 이용한 작업도 흥미롭다.
영한 작업이 <Sierra Nevada Wallpaper.GIF>다. 스톡 사진은 별 다른 의미가 없는 이미지다. 보통 편집
‘매체에 대한 메타 작업’이라는 표현을 구체적 하여 재조합하는 용도로 사용된다. 그런데 사진을 둘러
으로 설명해 달라. 싼 물리적 요소들을 변형시키면 스톡 사진의 이미지가
아날로그 사진에서 한 장의 결과물이 나오기까지는 세 달라진다. 프린트 사이즈에 따라 증명사진이 되기도,
단계의 과정이 필요하다. 필름으로 사진을 찍고, 암실 광고사진이 되기도, 파인아트가 되기도 한다. 분명 같
에서 현상한 다음 인화를 한다. 하지만 디지털에선 일 은 이미지지만, 용도라는 것이 가변적임을 알 수 있다.
련의 과정이 생략된다. 그런데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 한국에서 이 작업을 소개할 때 어려움은 없나?
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진 모두 한 장의 결과물을 얻 현재 미국에선 ‘매체 연구’ 작업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는다는 것이다. 분명 이미지를 만드는 과정이 다른데, 있다. 사진 시장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런데 아직
윤호진의 관심은 이미지가 어떤 형태로 물질화되
이미지를 본다는 행위는 다르지 않다는 점이 흥미로웠 한국에서는 인기가 없다. 관심 분야가 다른 게 가장 큰
는지에 있다. 어떤 디지털적 속성을 복제해서 이미
다. [Re]:는 사진적인 프로토콜에 집중하는 작업이다. 이유인 것 같다. 작업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늘 고민
지화화는 것에 중점을 두기보다는, 일련의 기계적
이미지가 만들어지고, 프레임에 둘러싸이고, 전시되는 중이다.
인 규칙과 과정들을 통해서 만들어진 최종 결과물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날로그 필름사진부터 디지 어떤 작가들의 작업을 참고해야 [Re]: 시리즈
로서의 이미지에 관심을 두고 작업 중이다. ‘어떤
털 사진, 프린트 이미지, 스톡 사진 등을 이용해 매체가 를 감상하는 데 도움이 될까?
의미를 찾기 위한 사진 보는 방식’에 익숙한 사람이
갖고 있는 표면성, 평면성 을 건드린다는 뜻이다. 레슬리 휴이트(Leslie Hewitt), 루카스 블라록(Lucas
라면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사진을
작가의 삶, 인문학 등과는 동떨어진 작업이다. Blalock), 리즈 데센스(Liz Deschenes), 에일린 퀸란
사진 자체로만 생각하고 작품을 감상하길 바란다.
사진을 어떤 것에 대한 재현이라고 한다면, 내 작업은 (Eileen Quinlan), 월리드 베쉬티(Walead Beshty), 제
한국예술종합학교 사진매체전공을 졸업했다.
‘재현’ 자체에 주목한다. 크게 보면 사진에 대한 이야기 임스 웰링(James Welling) 등을 추천한다.
에디터 | 박이현· 디자인 | 김혜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