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6 - 월간사진 2018년 12월호 Monthly Photography Dec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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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107)더포토-수오(6p)최종OK_월간사진 2018-11-21 오후 5:05 페이지 106
Texture of temperature series 곶자왈 Archival pigment print 2016
두 공간이 하나의 사진 안에서 신비로이 맞붙어 있다. 그러나 각각 다른 세상 속에 존재 중첩과 잔상으로 만든 이미지
하는 것처럼 다른 빛, 온도, 습도를 머금고 있다. 낮과 밤사이 혹은 새벽녘, 특별한 빛깔
을 띠는 그 시간에 하늘과 풍경이 지닌 색은 이질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이곳은 제주도 주된 작업 방식은 다중촬영이다. 두 개의 세상이 데칼코마니처럼 하나로 맞붙어 있는
다. 의외라는 생각이 든다면, 흔히 생각하는 관광지 제주도의 이미지와 너무 달라서일 사진도, 나무와 물결, 바위 등이 오버랩되어 있는 사진도 바로 이 기법으로 촬영되었다.
것이다. 수오의 사진 속 제주는 몽환적인 외딴 세계처럼 보인다. 일상적인 풍경의 조각 카메라를 똑바로 한 번 그리고 180도 돌려 거꾸로 한 번, 이렇게 시간차를 두고 촬영한
들을 중첩해 초현실적인 이미지를 완성한 <온도의 질감>을 감상하다 보면, 마치 어른들 것이다. 그 결과 위아래의 다른 형상, 다른 시간이 한 화면 안에서 중첩되고, 마치 꿈처
의 동화처럼 내재된 상상의 세계로 빠져들게 된다. 럼 잔상이 남아 있는 오묘한 이미지가 완성된다. 이렇게 작업하는 과정을 보고 어떤 이
는 “마치 카메라와 춤을 추는 것 같다.”는 표현을 했단다. 흥미로운 점은, 작가가 이 과
정에서 뷰파인더를 바라보지 않고 감각에 의해 즉흥적으로 촬영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제주, 영감의 원천 보니 사진의 결과물을 미리 예측할 수 없고, 우연의 요소를 그대로 수용하게 된다.
촬영은 주로 일몰, 해가 지기 직전에 빛이 가장 강할 때 한두 시간 동안 진행한다. 작가
수오의 사진은 그녀의 삶과 동떨어져 있지 않다. 제주도 서귀포 상효동에 거주하면서 는 그날그날의 온도, 습도, 구름의 모양, 나무의 모습을 새롭게 바라본다. 그렇기 때문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는 섬의 하늘, 물결, 숲, 그리고 자연이 내뿜는 공기를 사진에 담 에 프레임의 조건들을 미리 계산하지 않는다. 얼핏 흐릿하게 번지고 섞인 듯 보이는 수
기 때문이다. 특히 기암괴석, 곶자왈의 숲, 하늘, 구름, 달은 작가가 애정하는 피사체다. 오의 사진은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럽다. 심지어 우연히 끼어든 먼지의 미세한 흔적
5년 전 도시 생활을 접고 제주도로 이주한 작가는 자연 속을 유영하는 삶의 매력에 빠 들까지도 그대로 남아있다. 이 먼지의 흔적은 왠지 풍경의 호흡을 시각적으로 드러내
지게 되었다. 그러면서 더욱 선명하게 느낄 수 있는 섬의 이면을 카메라에 담았다. 제 는 듯한 인상을 준다.
주의 자연은 수오에게 영감의 원천이다. 숲 속을 산책하며 많은 시간을 보내는 그녀는 수오는 욕심을 내려놓고 자연을 겸허한 자세로 바라보는 것은 끝이 없는 공부라고 말
자연과 교감하고 그로부터 치유 받은 경험을 사진에 온전히 녹이려 한다. 한다. 사진을 찍으며 풍경을 존중하는 법에 대해 배워가고 있다고. 그저 작가는 감상자
오래전 광고사진 관련 일을 했던 작가는 건강상의 이유로 15년간 사진을 찍지 않았다. 들이 자유롭게 사진 너머 각자의 자연을 찾길 바라고 있다.
그런데 사진과의 인연은 예기치 못하게 이어졌다. 돌아가신 시아버지의 유품으로 카
메라와 렌즈 일체를 받았는데, 신기하게도 그녀가 과거에 사용했던 니콘F3 기종이었
다고 한다. 반가운 마음에 한 장, 두 장 제주의 일상을 찍으며 쌓아온 작업이 5년 뒤 어
수오 제주의 자연을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표현하며 사진을 즐긴다. 현재 개인작업실
엿한 시리즈가 되었다. 지금도 진행 중인 <온도의 질감> 시리즈는 ‘다중촬영기법 사진’
‘고이’에서 제주를 배경으로 한 사진작업과 도자기작업을 하고 있다. 2018년 살롱드참드에서 콜
과 ‘달의 정원’, 그리고 ‘두 개의 섬’으로 구성된다. 제주와 자연풍경이라는 큰 맥락을
라보 전시 <온도의 질감>을 열었고 사진전문출판사 ‘piece’에서 사진책 <Texture of tempera-
유지하면서도 그 결을 달리 하고 있다. ture>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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