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4 - Korus Club 24권(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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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구초심(首丘初心) 그리움을 따라 고향을 찾아온 사람들
                                                                                                                                        경남 남해 독일마을















             LA한인타운은 미주 한인동포 사회의 중심지이며 100여년이 넘는 미주한인 이민역사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미주 한인사회 성장의 원동력이다. 미
             주동포 뿐만 아니라 고국에서 사업, 관광등 목적으로 방문하는 사람들에게도 LA한인타운은 머물 언덕이 되어주고 있다. 올해 들어 LA한인타운에
             는 커뮤니티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 제기되어 많은 관심과 참여가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리틀 방글라데시 (Little Bangladeshi)                       노숙자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LA시의  노숙자  빈곤위원회
                                                                 (Homelessness and Poverty Committee)가 5월 22일 노숙자 셸터
             방글라데시 커뮤니티가 ‘리틀 방글라데시’ 구역 획정 요구청원서를 LA              를 건립하는 안의 심의를 승인했고 한인타운 임시 셸터 조례안을 통
             시에 제출해 지난 3월23일 승인을 받아, 6월 19일 실시되는 주민투표            과시켰다.
             결과에 따라 LA한인타운 지역을 대변하고 있는 윌셔센터-코리아타운
             주민의회가 ‘두동강’이 날 처지에 놓이게 됐다.                          노숙자 셸터가 들어설 곳은 한인타운 심장부라 할 수 있는 7가와 버몬
                                                                 트 애비뉴의 LA시 부지로, 조례안대로 시행될 경우 셸터 부근의 급격
             ‘리틀 방글라데시’ 구역 획정 요구 청원서에 따르면, 남북으로는 11              한 슬럼화가 우려되고 있다. 추진 중인 한인타운 셸터는 새로 건물을
             가와 멜로즈가, 동서로는 웨스턴가에서 버몬트가까지에 이르는 윌셔                 신축하는 것이 아니라 텐트나 트레일러를 들여놓는 형태로, 기껏해야
             센터-코리아타운 주민의회 지역 중, 남북으로는 5가와 멜로즈가, 동서              40~60명 정도밖에 수용할 수 없어서 여차하면 한인타운 곳곳이 노숙                                 여느 때처럼 빌헬름 엥겔프리트 씨는 반려견을 앞세우고 해변을 산책               “독일에서 40년을 살았지만 한국이 그리웠어요. 온돌방과 음식에 대
             로는 버몬트가에서 웨스턴가까지를 신설되는 ‘리틀 방글라데시 주민                 자들의 텐트로 뒤덮일 판이다.                                                       했다. 해안을 따라 펼쳐진 천연기념물인 방조어부림 숲을 거닐다가 몽              한 향수가 제일 컸죠. 여기 오니까 한국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어 좋
             의회’구역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돌해변에 앉은 노인은 한참 동안 수평선 너머를 바라본다.                    았어요. 그래도 아침은 독일식으로 먹어요. 한국에 오니 이제는 독일
                                                                 LA시는 ‘환경 평가서’가 전혀 없는 가운데 한인사회의 의견 수렴을 거                                                                                   햄과 빵, 치즈가 생각나요.”
             “다민족, 다인종으로 구성된 LA에서 커뮤니티간 공존과 협력은 필요               치지 않고 셸터 설치를 강행하여 많은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LA                                 몇 개월째 경남 남해 물건마을에 머무르며 민속조사를 하던 나는 노인
             하지만 우리 한인사회의 존립에 큰 영향을 줄 수도 있는 사안에 대해               한인회와 한미연합회 등 한인타운의 주요 단체들이 중심이 되어 LA시                                  의 뒷모습에 그리움이 배어 있음을 느꼈다. 하루는 그의 옆에 말없이              파독 간호여성인 박 씨 할머니는 간호기술학교를 졸업하고 보건소에
             서 많은 한인동포들의 관심과 6월 19일 투표 참여가 절실하다.                 의 부당한 처사에 항의하는 집회를 진행하고 있다.                                            앉았다. 그때 노인은 자신을 ‘빌리라 부르라’며 웃어 보였다.                 서 일하다가 외국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으로 서독행을 택했다. “서독
                                                                                                                                                                                           생활 초창기에 ‘닥터 지바고’를 보러 갔는데 반대 방향으로 가는 차를
             이번 투표에는 윌셔센터-코리아타운 주민의회 지역 거주자,직장인,                 이 두가지 사건을 겪으면서 한인사회의 아쉬운 점들에 대해 생각해 보                                  이후 빌리의 집을 방문했다. 빌리 할아버지와 춘자 할머니는 남해 독              타는 바람에 한참을 돌아 극장에 도착했죠. 사람들이 나와 있어서 끝
             부동산 소유자, 그리고 커뮤니티 이해관계자(교육기관, 비영리단체,                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 한인동포들은 어느 이민자 그룹보다 근면하고                                  일마을에 가장 먼저 입주한 가정이다. 빌리는 아내와 결혼 후 줄곧 독             난 줄 알고 기숙사로 돌아왔어요. 영화를 보고 온 동료들에게 물으니 1
             종교기관 포함)들이 참여할 수 있다.                                성실한 것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정치력 신장                                  일에서 살았기 때문에 여생은 아내의 나라에서 살겠다는 생각으로 왔               편이 끝나고 휴식시간에 잠깐 사람들이 나온 거라고 하더군요.”
                                                                 이나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투자하는 데는 소홀하다는 평을 듣는다.                                   단다.
             5월5일~6월12일: 온라인 우편투표 등록, 5월21일부터 우편 투표지             물론 LA시 당국의 처사에 문제가 있지만, 이것도 결국 우리 한인사회                                                                                    우리 경제 발전 과정을 설명할 때 가장 앞줄에 있는 것이 이 파독 근로
             가정으로 발송, 6울19일: 선거일(우편투표지 제출 마감일)                   의 힘의 부족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앞으로 미주 한인사회가 한 단                                 그의 이름인 ‘엥겔프리트’는 ‘평화의 천사’라는 의미이다. 남해의 맑은            자들이다. 지금까지 이들을 1960, 70년대의 울타리에 가둬뒀다. 그들
                                                                 계 업그레이드 되기 위해서 우리가 힘을 합쳐야 할 일을 생각해 보는                                  공기와 멋진 풍경을 누리다가 천사처럼 아내의 곁에서 죽을 거라며                은 국가를 위해서 서독행 비행기에 올랐던 것도 아니고, 외화 획득이
             한인타운 한복판 노숙자 셸터 (Homeless Shelter)                  것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웃었다.                                               나 돈벌이만을 위해 고된 일을 견뎌내고 외로움과 그리움을 이겨낸 것
                                                                                                                                                                                           도 아니다. 그 시절, 서독은 희망의 땅이었다. 누군가에게는 가난으로
                                                                                                                                        춘자 할머니는 파독 간호여성으로 살다가 남해로 왔다. “1971년 서독            부터 탈출할 수 있게 해주는 땅이었고, 어떤 사람에게는 더 큰 세계에
                                                                                                                                        으로 가보니 말이 안 통하잖아요. 기숙사 방문 앞에 신발을 벗어놓고              서 꿈을 펼칠 수 있는 무대였다.
                                                                                                                                        들어갔는데 독일인 동료가 매일 방문을 두드려서 신발을 가리키며 중
                                                                                                                                        얼거려요. 신발에서 냄새가 나서 그러는 줄 알고 자주 빨았죠.                 우리가 지금까지 그들의 어깨에 올려둔 거창한 구호와 무거운 짐을 내
                                                                                                                                                                                           리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바라볼 때이다. 그리움을 따라 남해로
                                                                                                                                        나중에 무슨 뜻인지 알게 됐죠. 신발을 방에 넣어두라는 말이었어요.”             찾아왔지만 이 땅 역시 그들에게는 낯선 곳이다. 젊은 날, 꿈을 찾아갔
                                                                                                                                        남해 독일마을은 파독 광부와 파독 간호여성들의 정착촌이다. 파독 광              다가 그리움을 따라 다시 왔다. 긴 여정의 종착점으로 남쪽의 따뜻한
                                                                                                                                        부를 한 김 씨 아저씨는 독일에서 사업으로 성공했다. 사업체는 아들              섬을 택한 노년에 평안이 깃들기를.
                     LOS ANGELES NEWS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에게 물려주고 한국으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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