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 - 부안이야기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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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안면                                                      행안면(幸安面)이라는 땅이름은 1914년 일제





                                                                   의 행정구역 폐합 때 처음 등장하였는데, 이는

                                                                   『고려사』 권114, 열전27 나세(羅世) 조에 보이

                                이야기                                는 행안산(幸安山)에서 취한 것으로 보인다. 행

                                                                   안산은 행안면을 상징하는 지형으로 부안읍내
                                                                   남쪽에 자리하고 있어 흔히들 남산(南山)이라

                고도 하며, 왕가산(王駕山), 시어산(侍御山)이라고도 한다. 행안면의 중심지인 역리 일대는 고려시대에 부

                령현(扶寧縣)의 치소가 있었던 곳으로 마을 뒷산에는 읍성이 있었다. 산 이름도 예전에 성이 있었다 하여

                고성산(古城山)이며, 지금도 읍성(역리산성)의 자취가 남아 있다. 조선시대에는 이 마을에 부흥역(扶興驛)

                이 있었다. ‘역말’ ‘역리(驛里)’라는 땅이름은 바로 이 부흥역에서 비롯되었다. 예전에 행안면 대부분의 지

                역은 바다였다. 신기리 청교마을을 거슬러 진동리 지석마을 아래까지, 그리고 삼간리 검암, 마동마을 아래

                까지 조수가 닿았다. 궁안마을 위 대벌에는 중선배가 드나들었고, 새봉산-계화도 일대 바다에서는 어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으며, 궁안-삼간마을 일대 갯벌지대 곳곳에서는 소금을 구웠다. 그런가 하면 궁안·삼간

                일대에서는 부안에서 비교적 이른 시기인 19세기에 간척이 시작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당시 간척은 재
                력이 있고, 고을민의 동원이 가능한 궁방(宮房)이나 권력가들에 의해 주로 이루어졌는데, 궁안·삼간 지역

                은 용동궁(龍洞宮)소유의 토지였으며, 바닷물에 의한 피해를 방지하고자 궁방전의 소작인을 징발하여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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