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3 - 하나님이 주신 멍석에서 멋지게 놀아라(최웅섭이야기)증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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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시간이 지나 모임에 참석한 그에게 세례를 주었고, 많은 간증과 실을 모르고 경솔한 행동으로 나에게 이렇게 상처를 주는 것일까 생
은혜를 체험한 고백을 나누기도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믿음 안에서 각이 들었다. KGB, 경찰, 검찰에서는 오히려 나에게 그를 고소하라
살려고 애쓰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마침내 사무실 직원으로 채용하 고 했다. 한술 더 떠 KGB에서는 내 돈을 들고 도망간 그를 언제든
기에 이르렀다. 사무실 직원이 된 뒤에는 많은 책들도 번역하며 비서 지 잡아줄 수 있으니 말만 하라는 얘기까지 했다. 어찌 해야 하는지,
역할을 훌륭히 해냈다. 그는 결혼하여 자녀를 한 명 둔 한 가정의 가 괴로울 따름이었다.
장이기도 했다. 그를 수도로 불러온 사람도 나였고, 그의 집에 있는 그로 인해 한없는 눈물을 흘렸고, 분노를 삭이느라 고통스러워했
모든 것, 그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두 내가 해준 것일 정도로 가까 지만, 그를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 마침 대형 프로젝트였던 축구장 공
운 관계가 되었다. 제2의 최웅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사도 마무리되어 홀가분한 상태였고, 호텔과 수영장은 내가 아니더
그런 그가 나를 고발한 것이다. 이슬람 국가에서는 최대의 아킬레 라도 다른 사람에게 맡기면 될 상황이었다. 큰 일들을 정리하며, 개
스건일 수밖에 없는 선교사라는 사실을 모든 물증과 함께 고발한 것 인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주었던 이 일과 연관 지어 여러 가지 생각들
이다. 가장 먼저 찾아온 것은 분노였다. 거룩한 말씀을 전하는 목회 을 정리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기분이 안 좋았지만 차라리 잘 되었다
자, 선교사의 신분이라고 해도, 나 역시 한낱 인간이지 않은가! ‘내 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이 일이 터지기 전에 바쿠를 떠나 한국이나
가 그에게 어떻게 했는데’라는 생각이 밀려오자 화가 치밀어 올랐 다른 곳으로 가서 더 큰 변화를 모색하고자 마음속으로 준비하고 있
다. 도저히 그의 얼굴을 쳐다볼 자신이 없을 정도였다. 그 다음에는 었기 때문이다. 그 무렵에 이런 문제가 발생했고, 이러한 상황은 하
눈물이 나왔다. 나의 모든 정성을 다해 섬겼었고, 무너진 가정을 회 루 빨리 바쿠를 떠나기로 결정하는 데 가속도를 붙여주었다. 사업이
복시켜 주었으며, 삶의 터전까지 마련하여 주었는데, 어떻게 이런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서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나가고 싶은 마음이
일이 일어난단 말인가! 생겨났고, 이제 아제르바이잔을 떠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할 즈음, 이
몇 날 며칠 힘들어하다가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파익이 나를 잘 런 일이 발생하니 미련 없이 떠날 수 있어 오히려 주께 감사했다.
못 알고 있었구나’ 하고 느꼈다. 당시에 나는 이미 정치, 경제, 교육 그 무렵, 브라질에 거주하는 지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백년 된 축
등 아제르바이잔 사회 전반에 걸쳐 주요 인사들과 인적 네트워크를 구 구단 구단주가 만나고 싶어 한다는 내용이었다. 브라질뿐만 아니
형성하고 있었다. 주요 정부 인사들과는 정말 친하게 지내는 사이였 다. 파라과이, 알바니아, 터키, 카자흐스탄 등 점점 더 사업의 규모가
기 때문에 그런 일로 고발해봐야 소용없는 일이었다. 어째서 그 사 국제적으로 커지면서 바쿠에서 각국을 비행기로 옮겨 다니기가 힘
72 주님이 지목하여 부른 땅 아제르바이잔공화국 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