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93 - 죽산조봉암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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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공산당과 고려공산청년회를 조직하려고 종래의 운동 정세를 말하며
그들은 「경성에는 서울청년회가 단연 우세하고 게다가 군중적으로 조직
됨으로써 그 그룹 중에 종자를 따르려는 지당함을 불문하고 따라서 신흥
청년동맹 등을 조직하는 일은 분열이 생겨 운동선에 지장을 초래하는 원
인이 될 것이다」라고 반박함으로써 조봉암은 당초 서울파 간부에게 압력
을 가해도 공명을 얻지 못하여 부득이 별개의 그룹을 조직한 이유를 설명
하여 그 이해를 얻었다. 그리고 북풍회계 김약수와 중립당 유진희, 주종건
등을 끌어안고 또 노동회 방면에도 손을 뻗어 더욱 비밀결사 조직에 일로
매진했으나 그것을 위해서는 우선 지반 옹호와 군중 조직의 필요가 있으
므로 조봉암은 김재봉, 김찬, 권오설, 박일병, 강달영, 김원근, 박헌영 등
과 협의한 결과 이미 조선 내에는 청년, 노동, 농민 등의 조직 운동이 진전
하고 있어 신사상연구회의 후신인 화요회를 표면으로 세우는 등 민중운
동자를 한데 모아 민중운동의 목표를 주어 장래 통제적으로 지도하지 않
을 수 없다고 하여 각 원(員)이 각각 지방으로 출장가서 활동하게 되었으
며 조봉암은 다이쇼14년 1월경부터 대구, 해외, 평양 방면을 돌아다니고
동지 청년, 노농 각 단체에 공작을 했다.
그리고 전조선민중운동자대회는 다이쇼14년 4월 21일 경성부 장곡천정
공회당에서 개최하기로 결정되었지만 당시 이미 각 지방 군중 단체는 민
중운동자대회에 큰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앞의 민중운동자대회 개최 계획이 되자마자 한편 재경성 언문 신
문, 통신, 잡지 기자 등은 언론의 자유 기타 당면 이익 획득을 기약하기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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