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90 - 죽산조봉암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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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노동총동맹 등의 결사를 조직하는 등 이미 내면적으로 파쟁을 양성하
고 있는 상태가 되어도 서울청년회는 비교적 세력이 있으므로 조봉암 등
은 먼저 동회 간부 이영, 윤봉순(尹鳳淳-任鳳淳의 오기로 보임-번역자) 등
에게 공산청년회 조직에 분개하며 그들은 해외의 문제에 귀 기울이지 않
고 당의 조직을 보지 않고 전의 공산청년회 조직은 모순되어 이에 공명하
지 않음으로써 꼬르뷰로 내지부는 기성단체인 경성노동연맹회를 표면으
로 세워 조선노농총동맹준비발기회라는 것을 조직하고 경성부 견지동에
서 그 간판을 내걸고 자기 地○○張과 옹호에 이바지하기로 했다.
그래서 이에 대해 서울청년회는 약 40명쯤을 망라하여 경성에서 전선노
동대회를 개최하고 대항의 기세를 떨침으로써 내지부는 노동자, 농민이
아닌 분자가 노농대회를 개최하는 것도 용두사미로 끝날 것이라고 하는
등 암암리에 파쟁을 격성하려고 하는 영단기(零團氣)가 있으므로 조봉암
은 소위 불편부당의 태도를 가지고 국제당의 결정된 「고려공산청년회는
어떠한 당파에 관계하지 말 것」이라는 것을 존중하고 독자적으로 이것이
조직 방향을 주장해도 서울청년 회계 분자는 의연 공명하지 않음으로써
지금 더욱 내지부에서 공작하기로 결의했다.
그래서 이것을 위해서 비서 단체만으로는 군중 공작은 불가능하므로 아
무리 하여도 군중 단체와 긴밀한 연락을 유지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에
기성단체인 무산청년회 간부 전무(全無) 및 토요회 간부 민모(閔某) 등에
게 선전하고 그 공명을 얻어서 다이쇼12년 12월 말경 경성부 수표정 모
(某) 조선 인방에서 회원 2, 30명을 불러 신흥청년동맹 창립대회를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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