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87 - 죽산조봉암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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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크에 있고 조선 내 공작은 경성에 내지부가 있는 한편 해외에는 상해
           에 기성 단체인 국민대표회 내에 창조파(종래 역사를 무시하고 새롭게 단

           체 조직을 주장하는 파) 및 개조파(종래 역사를 존중하고 장점을 취해 기

           성 단체를 개조하려는 파) 등으로 분립하여 내분이 계속되어 결국 극도의

           논란을 겪게 되고 활동이 없기 때문에 조선 내에 당과 고려공산청년회를

           조직할 필요가 있지만 자신이 조선에 가도 되지만 총국 책임이라는 지위
           가 있는 이상 도저히 불가능하므로 군(조봉암을 말함)은 귀선하여 고려공

           산청년회 총국 대리 책임으로 조직을 완성케 하라」고 지시했으므로 이를

           승낙했지만 이 사이 꼬르뷰로에도 출두한 이동휘, 한명세 등과 면접하여

           조선공산당 조직을 협의하고 드디어 입선 공작을 결의한 조훈으로부터

           여비 200원을 받아서 9월 중순 중국 기선으로 블라디보스토크항 출범 약
           5일째에 청도에 도착하여 중국인 여관에서 3일간 체류하고 상해로 향하

           여 법계 포석로문사에 가서 시모노세키, 부산을 거쳐 9월 하순 경성에 도

           착하고 부내 견지동 전동여관에 투숙했다.



           三. 꼬르뷰로의 내용

            イ. 조직준위




           앞을 통해 상해파, 이르쿠츠크 양 파는 늘 배격하고 당면 책무인 공산당
           공작에는 어떠한 공헌이 없으므로 코민테른은 우려의 제거 두 파의 합동

           을 도모하고 우친스크에서 대회를 개최하게 된 것도 역시 기대에 반해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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