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11 - 죽산조봉암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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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 후일 대표가 구체적 보고서를 가지고 또 사업을 원만하게 계속함은
           지부로 승인하는 것도 늦기 때문에 대표를 촉진할 것

           라고 지령함으로써 조봉암도 이 이상 요구할 수 없어서 후발 동지 조동호

           의 활동을 기대해야 했다.




            ロ. 고려공산청년회 승인 활동



           앞과 같이 조선공산당 승인을 얻을 능력이 없더라도 다이쇼15년 6월 중

           순경 오전 11시경 국제공산청년회 상무집행위원회에 출두하여 통지가

           있음으로써 조봉암은 남만춘, 조훈과 함께 본부에 출두했다. 당시 위원회

           (약 5명)가 개최 중으로 조봉암은 남만춘의 통역으로 조선공산청년회 조
           직 경위와 조선의 운동 정세를 보고하고 동 위원회는 이 보고서를 제출하

           도록 명함에 따라 조봉암은 즉시 자기의 숙소에 돌아가 먼저 러시아어로

           일절 경위와 정세를 남만춘이 번역하여 타자기로 약 10부(1부 약 20매

           가량)를 작성하여 제출하고 동년 7월 20일경에 이르러 조훈을 통해 국제
           공산청년회 중앙집행위원회를 개최할 때 출두 지령이 있으므로 조봉암은

           당일 오후 1시경 남만춘, 조훈과 함께 그 위원회에 출두했다.

           이리하여 위원회는 러시아, 독일, 영국, 프랑, 중국 각국 약 20명쯤으로

           구성하여 먼저 중앙집행위원 독일인 모 사회자로 개회를 선언하고 고려
           공산청년회의 심의로 넘어갔다.

           사회자로부터 고려공산청년 운동은 1919년경부터 총국을 설치하고 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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