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4 - 죽산조봉암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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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차한 집 차남으로!



                   나는 강화도 남쪽 원면이라는 촌에서 나와 강화읍에서 자랐다. 우리 아버

                   지는 삼대독자이신데 우리는 사 남매 중 삼 형제이다. 나는 그 둘째 아들

                   이다. 내 애명은 새 봉(鳳)자 봉암인데 중간에 받들 봉(奉)자 봉암으로 행

                   세했다.
                    원래는 빛날 환(煥)자가 소위 돌림자인데 우리 삼 형제는 바위 암자 돌

                   림이다. 어찌 그리된 고 하니 내 맏형 위로 두 아들을 잃으신 우리 부모님

                   께서는 셋째로 얻은 아들의 명이 길으라고 바위라고 했으면 좋겠는데 차

                   마 바위라고 부르시기는 부끄러우셨던지 목숨 수(壽)자 수암이라고 부르
                   셨다. 그다음 나를 낳으실 때는 꿈에 봉을 보셨으니 새 봉(鳳)자를 넣어

                   서 이름을 지으라는 어머님의 명령으로 형이 수암이니까 봉암이라고 했

                   고, 내 아우는 용을 보셨다 해서 용암이라고 부르고 보니 암자 항렬이 되

                   고 만 것이다.
                    우리 집은 구차하기는 해도 평화스러웠다. 어머니는 좀 사나우신 편이지

                   만, 아버지께서는 거의 절대적인 평화주의자이셨다. 그저 착하기만 하셔

                   서 집안사람들에게나 동리 사람들에게나 도무지 남과 시비를 하시는 일

                   이 없으셨다. 그 덕분으로 나는 자유로운 가정 분위기 속에서 자유롭게 자

                   랐다. 집안 살림이 가난하기는 해도 마음에 구김살 없이 의젓하게 자랐다.
                    4년제 소학교와 2년제 농업보습학교를 마치고는 공부할 것은 단념해버

                   리고 열네 살 때부터 직업을 구하러 나서지 않으면 안 되었다. 6년제 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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