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9 - 죽산조봉암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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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만세와 투옥




           삼일운동 때 젊은 동지 열두 명과 더불어 일 년간 서울 서대문형무소에 투
           옥되었다. 우리 강화에서의 만세운동은 유봉진 씨의 영도 하에 치밀한 계

           획으로 방방곡곡 어느 작은 부락 하나도 빼지 않고 일어났었고, 그것이 한

           달 동안이나 계속됐었다. 그런데 유 선생의 지도방침은 철저한 평화적 시

           위였기 때문에 수천 명이 태형(볼기 맞는 형벌)을 당했을 뿐, 감옥살이를
           한 사람은 비교적 많지 않았다. 유 선생은 마니산 꼭대기에 숨어서 만세

           운동을 지휘했고, 왜놈에게 체포되어서도 ‘독립운동자 유봉진’이라고 종

           이에 크게 써서 가슴에 붙여주지 아니하면 말 한마디 대꾸도 안 했다. 유

           선생은 오 년 징역살이를 했고, 우리 애기패들은 일 년 살았다.















            (왼쪽) 만세mansei하는 조선사람들. 3·1운동 당시 미국공관 앞 골목에서 만세 하는 장면을 선
            교사가 촬영한 것으로 추정된다. (오른쪽) 시위진압을 위해 배치된 일본군. 3·1운동 시위 진압
            을 위해 배치된 일본군이 공원앞에서 소총을 파지한 채 쉬는 모습이다. 이 사진은 성명 미상의
            선교사가 일본의 만행을 고발하기 위해 사진집 형태로 제작해 미국과 프랑스 등에 배포한 책자
            의 일부다(출처 UCLA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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