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2 - 죽산조봉암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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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과 싸운 평양 사건
서울에서 고학이 될 리도 없고, 또 시답지 않게 생각되는 점도 있어서,
일본으로 건너갈까 하던 참에 의외에 평안남도 경찰부에 체포되었다. 잡
히어 가보니, 내가 평소에 존경하던 학감 최 선생님과 유도왕인 강낙원,
이제민 등 명사 여러분이 한데 얽혀 있었다.
나는 평소 그분들을 존경했고 친히 지냈을 뿐이지, 무슨 일을 구체적으
로 의논해 본 일은 없었다. 그런데 잡혀가던 날부터 가지각색의 고문을 당
하면서 듣고 보니 우리들이 폭발탄을 만들어서 어디다 감추어 두었고 0월
0일에 YMCA를 중심해서 거사를 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나는 정말 모르
니까 그저 모른다고만 했다. 그때 평안도에서 제일간다는 형사 나까무라
(中村)라는 놈이 담당이 되어서 밤마다 고문하는데…
만 십오 일간을 이런 곤경을 치르고 나니, 꽤 단단하다고 자부하던 나도
파김치같이 되었으니, 다른 분들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
지금 생각하면 이 평양 사건이 내가 왜놈들에게 붙잡혀서 고초를 겪은
두 번째 일인데 그것이 어떻게 혹독했던지, 그 후에 수차의 감옥살이, 수
십 차의 유치장살이를 해보았지만, 평양 때보다 더 어려운 고비는 별로
없었다.
(정태영·오유석·권태복 엮음, 1권, 1999: 333-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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