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0 - 죽산조봉암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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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세와 바꾼 매질
그때, 옥중에서는 가끔 만세 소동이 있었다. 외부에서 이 땅의 독립에 대
한 무슨 기쁜 소식이 들려온다든지 옥내에서 애국자들을 학대했다는 소
문이 들린다든지 하면, 전 감옥이 들썩하도록 만세 소리가 터져 나왔다.
감방마다 만세를 부르는 소리를 지르고 감방문을 두드리고 야단이 난다.
그런 뒤에는 의례히 한 감방 안에서 몇 사람씩 끌어내어서 여러 가지 형
식의 고문도 하고 마구 두들겨 패기도 했다.
나도 그 사건에 가끔 걸려들어서 매달리기도 하고, 두들겨 맞기도 했었
다. 하루는 또, 고함을 치고 만세를 부르고 문짝을 발로 차고 날뛰다가 또
붙잡혀 나갔다. 나는 붙잡혀 나가면서도 기를 쓰고 만세를 불렀다. 놈들
이 가죽띠로 마구 후려갈기면 갈길수록 더 악을 써가며 만세를 불렀다.
그러니까 놈들은 독사같이 약이 바싹 올라가지고 발길로 차고 혁대로 갈
기면서 “이놈의 자식 만세 한 번 혁대 한 번씩 해보자, 어느 편이 이기나
보자” 한다. 그래서 나는 몹시 빨리 만세! 만세! 만세! 하고 한 삼사십 번
을 연해 불러댔더니 놈들도 기가 막혔든지 “참 알 수 없는 자식이로군.”
하고는 때리는 경쟁은 그만두었으나 나는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서 기
절한 채로 콘크리트 바닥에서 하룻밤을 새운 일이 있었다. 그때 내 나이
스무 살이었다.
(정태영·오유석·권태복 엮음, 1권, 1999: 330-332)
■ 9월 30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무죄판결로 석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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