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09 - 죽산조봉암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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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상해 도항 후 활동
イ. 상해 한인지부 관계
염용섭은 상해 도항과 함께 같은 고향 사람인 김백흥, 조한용 등의 소개로
상해 공공버스회사(영국인 경영) 차장으로 취직하여 회사의 규정으로 각
정류장에서 자장은 반드시 하차하고 손님을 권유, 상차하는 것으로 이를
게을리 하면 1회의에 해당하는 벌금 1불씩을 강제로 징수하는 등 실정이
보여 자본가 계급이 노동자를 착취하는 것이며 이와 같이 자본가의 횡포
에 대항하는 프롤레타리아의 단결에 필적한는, 즉 자본가와 투쟁하여 프
롤레타리아의 이익을 전취하고 또 그를 옹호하는 것은 노동계급의 선결
문제라고 통절히 느끼고 때마침 쇼와4년 1월 상해 법계 고발로(古拔路)
61호 자택에서 조한용의 소개로 중국공산당 상해한인지부 선전부 책임
김형선과 만난 이후 수차례 동인으로부터 현재 사회 구조의 불합리한 것,
노동자를 착취하는 자본가는 전부 타도하지 않으면 안되므로 프롤레타
리아의 정당인 공산당에 가입하고 투쟁에 나아가 공산제도 사회를 건설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선동하기 때문에 염용섭은 드디어 공산주의운동에
참가하기로 결의하고 쇼와4년 8월 말경 김형선의 신원보중에 의해 중국
공산당 상해한인지부에 그 뜻을 알면서 가입하고 쇼와6년 1월에는 제1조
조장이 되고 그 사이에 삐라, 뉴스의 배포, 동지의 획득 대회, 기타 회합
으로 지부 사업을 결의함과 동시에 매년 3월 1일, 6월 10일, 8월 29일의
소위 조선독립운동기념일에는 그 때마다 기념식을 거행하거나 또는 데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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