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6 - 죽산조봉암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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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있었으니, 그 하나는 ‘공동조계지’라 해서 영국인이 중심이 되어 통치
했고, 다른 하나는 ‘불란서 조계지’라 하는데 명칭대로 프랑스의 통치구
역이다. 우리 임시정부를 비롯해서 모든 반일본적인 인사들은 전부 ‘불란
서 조계지’ 안에 거주했고, 또 사실상으로 프랑스 당국의 보호 아래 있었
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 불란서 치들이 1928년 이후에는 현
저히 친일정책을 써서 가끔 일본놈과 타협하고 합세해서 우리나라 애국
자들을 체포하는 수가 있었으니 여운형 씨도 공설운동장에서 체포되었
고, 안창호 선생이 숙소를 불의 습격을 당해서 체포되었고, 나는 불란서공
원(고가택공원) 안에서 일·불 경찰에 잡혔다. 그 뒤로도 상당히 많은 사람
들이 ‘불란서 조계지’에서 잡혔기 때문에 모두들 숙소를 감추거나 조계를
벗어나서 중국 거리로 들어가거나, 또는 남경 등지로 옮기었다.
내가 상해에 있는 동안에 내 처가 찾아와서 오 년간 동거했고, 딸을 하나
낳아서 이름을 호정이라고 지었는데 상해의 고명이 ‘호’이기 때문에 상해
에서 얻었다는 뜻으로 호정이라고 했다. 호정의 모친은 김이옥인데 내가
신의주 감옥에 들어가 있을 때에 귀국해서 병사했다.
(정태영·오유석·권태복 엮음, 1권, 1999: 357-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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