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3 - 죽산조봉암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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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7년




               ■  1월 초, 김이옥이 상해로 찾아와 동거를 시작했다. 조봉암은 상해 조계의
               특성을 설명하면서 부인과의 만남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망명지 상해에서 만난 아내



            나는 1925년부터 1932년 왜경에게 잡힐 때까지 7년 동안을 상해를 중

           심해서 살았다. 중국 조직에 관계를 맺었지만 우리끼리의 조직을 가지고

           일했었다. 그때 우리 동지들은 그 대부분이 국내로부터 망명한 사람들이,

           만주, 노령, 광둥 등지에 있던 분들이 모이기도 해서 항상 50, 60명으로
           부터 백 명 내외의 동지들이 웅성대고 있었다.

            노상해(상해에서 오래 살던 사람)로는 몽양 여운형·최창식·강매련·현

           진건 등과 1925년 이후에 국내로부터 망명한 사람으로는 홍남표·김형

           선·김명시·김조이·김찬·정백·한위건·안광천·김단야·원우관·최원택·김

           동명·김달삼 등과 광둥에서는 양명·최추해·팔선재·장래홍·마일명·무정
           등 그리고 만주 노령 등지에서는 성시백·김명희·주복 등이 생각이 난다.

            우리들은 끝내 표면단체는 가지지 않았었고 ‘한인청년동맹’이라는 청년

           단체를 조직해서 청년 교양에 주력했었다. 그 한인청년동맹의 위원장이

           던 조○○은 1926년에 왜경에게 잡히어 5년 징역을 치렀다.
            상해에는 두 개의 조계(租界)가 있어서 중국을 무시한 딴 나라 정치를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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