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39 - 일산교회 60주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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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 전문가 집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통편도 불편한 일산 성전 신축부지에 오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그렇

 그리고 본당 바닥 모든 면에 온수온돌을 설치한 일도      지만 연로한 권사님들까지 교회 건축을 돕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매일

 제  매우 돋보이는 도전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본당 바닥  출근하다시피 했다. 목수들이 사용한 거푸집을 수리할 때 판넬의 못
 4  에 럭키(LG그룹의 전 이름) 호스를 깔아 온수를 돌리는   을 빼고, 지하에 천공한 빔을 철거할 때 그 자리를 모래로 메꾸는 쉽
 장
    일
 산  개량식 온돌방식을 채택한 것이다. 바닥에서 나오는 열  지 않은 사실상의 중노동까지 마다하지 않으셨다. 그 뿐인가? 길가에
   시 대  기로 예배당 안이 다 따뜻하도록 만들었다. 앞으로 언젠  쌓아놓은 벽돌을 1층은 물론, 2층이며 3층이며 4층까지 운반하는 일
 드디어 올라가기 시작한 일산그리스도의교회 모습.  가 닥칠 남한 주도의 통일과정에서 일어날 수도 있는 북  도 그 분들은 해내셨다. 공사 일과가 끝나면 정리하는 일이며 틈틈이

 한의 급격한 붕괴사태 등으로 북한 주민이 대거 남하할 경우, 휴전선  곳곳을 청소하는 일... 땀방울에서 단내가 나는 것도 잊고, 잠자리에
 에서 가장 가까운 대도시인 고양시의 우리 교회가 이들을 주도적이고  누우면 삭신이 쑤시는 아픔도 마다하지 않으셨다.

 도 선제적으로 수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큰 그림의 이상주의를 반영  안타깝게도 우리 교회를 짓는 동안 IMF 구제금융사태를 맞았으며
 한 설계인 것이다.                        건축 재정의 어려움으로 공사가 몇 차례 중단되기도 하였다. 심지어

 이 방안은 그 지향점의 탁월함 못지않게 바로 우리 민족의 자랑 ‘온  공사비 미지급 문제로 담임목사와 건축위원장, 현장 감독은 이루 말
 돌’을 이런 이상주의와 결합했다는 점에서 주목받을 만하다. 왜냐하  할 수 없이 시달리기도 했다.

 면 오늘날 대한민국의 국제영향력이 ‘한류’라는 이름으로 확산돼 가  그렇게 건축 재정의 어려움으로 더 없이 힘들고 암울한 기간도 있
 는 상황에서 ‘온돌’ 역시 그 친환경성, 기후변화에 대한 선도적 해결  었지만, 끝내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새 밀레니엄 시대에 들어 새 성전

 방안의 성격, 저렴한 시공비용, 탁월한 열효율, 압도적으로 우수한 보  을 완성해낼 수 있었다. 그리고 2000년 4월16일 감격의 입당예배를
 온효과 등으로 전 세계에서 새롭게 평가받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드리며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 눈물과 깊은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런데 지금으로부터 거의 30년 전에 우리 교회가 이 ‘온돌’을 통해 북
 한주민의 구제, 남북통일에의 기여, 그리스도교회의 향후 북한선교에

 서의 비교우위 등등에서 앞설 수 있도록 예비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5) 본당 내장공사
 언젠가 우리 교회의 이런 통찰력과 준비태세는 분명 제대로 평가받고

 전 세계에 알려지는 큰 역사가 일어날 것임에 틀림없다.      예배당 공사의 마지막 마무리는 본당 설계와 내장 공사였다. 외부
                                   전문회사에 맡기기엔 소요 경비가 정말 만만치 않게 들어갈 참이었

 우리 성도들은 또한 공사과정에서 저마다 그 어떤 거친 노동도 마  다. 본당은 한번 공사하면 바뀔 수 없고 그대로 끝까지 간다. 따라서
 다하지 않았다. 우리 교회는 건축비용을 최대한 절감하기 위해 ‘교회         내장 공사에 정평이 나있고 믿을만한 건축회사에 맡길

 자체의 직영 공사’로 설정했다.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교회 재정형편상 공사비 절약
 “교회 재정형편상 공사비 절약을 위해 직영으로 공사를 하자”             을 위해 직영으로 공사를 하자”는 교회의 결정에 따라

  바로 인건비를 최대한 줄여야 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한편으로          주위에서 실력 있는 인테리어 전문가를 구해야 했다. 이
 는 참으로 어렵고 힘들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렇기에 우리 성도          때 본당 내장공사를 맡아 할 가장 적합한 인물을 찾아냈

 들은 이뤄내는 매 순간순간이 감사하고 감격스러웠다.                  다. 바로 건축설계회사인 ‘힐스테이트’ 소장인 김동구
 그 당시엔 성도들이 북아현동과 노량진 일대에 주로 살았기에 교  안에서 내장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집사였다. 김 집사는 북아현동 시대에 학생회와 청년회


 238ㅣ1962-2022 일산그리스도의교회 60년사                                         은혜의 60년을 넘어 새시대로ㅣ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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